난 곰이고 싶지/ 유강희
난 곰이고 싶지/ 유강희
난 말이지
쑥 열 동이를 먹고
마늘 닷 섬을 먹고
다시 곰이 되고 싶지
사타구니가 칡잎처럼 풋풋한 검은 곰이고 싶지
그중 억센 소나무 둥치에 텅텅 등을 치고
그중 큰 바위에 탁탁 발바닥을 두들기며
미련하지만 뚝심 좋은 노래를 크게 크게 부르고 싶지
시퍼런 식칼 하나 들고
내처 논두렁 밭두렁을 먹어들어가면
쑥은 우리나라 어느 한 곳 안 남아돌 것 같지만
쑥처럼 무장무장 자라고 저를 퍼주는 것도
세상엔 드물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부신 봄날
난 사타구니가 앞들만큼이나 넓은 곰이고 싶지
싱싱하고 달콤한 벌통만을 깨먹는 곰의 여자이고 싶지
그래서 허벅지가 통통한 밭두렁을 낳을 거야
가슴팍이 기름지고 찰진 논두렁을 낳을 거야
궁둥이가 큰 옆집 암소를 낳을 거야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잔치를 벌일 만큼 큰
교회보다 절보다 웅장한 마을회관을 낳을 거야
옛이야기를 풀듯 나를 닮은 곰새끼를 줄줄이 낳을 거야
쑥을 캐다보면
어느새 온몸에 쑥물이 들고 쑥내가 나고
불탄 자리에서 난 쑥은 더욱 눈물겨워
우리나라 옛 여인들의 눈물을 아로새긴 듯
함부로 어린 쑥의 밑동을 따내지 못하는데
어디선가 풀피리 불며 오는 가슴이 큰 곰여자
- 『오리막』수록
* <단군신화>에 따르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먹고 삼칠일을 견딘 곰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을 우리민족의 시조로 생각한다면 시조의 엄마가 곰인 셈이니 우린 곰의 자손이기도 하다. 물론 곰을 이런저런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기는 하지만 그냥 곰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신화와 전설이 사라진 자리, 또 그 자리에 남의 나라의 신화가 대신 앉아 있기도 한 이 시대에 토종 곰여자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화자는 쑥을 캐다 말고 신화 속 곰여자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 봄의 생명력을 한 몸에 받아서 쑥은 어디든 쑥쑥 잘도 올라온다. 봄의 기운이 쑥에 들고, 쑥의 기운이 화자의 몸에 돈다. 화자는 그 옛날의 곰여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내친 김에 몸 안의 이 건강한 기운을 논두렁, 밭두렁, 마을회관, 옆집을 지나 후손들에게까지 고루고루 내주고자 한다. 이 과정에 교회나 절보다 마을회관을 선택한 것이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교회나 절도 좋지만 한데 다 어우러질 수 있는 공동체가 아무래도 더 건강한 모습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이 아름다우면 그 공동체도 절로 아름다워진다. 쑥의 밑동을 함부로 따내지 못하는 순한 마음들이 모인 공동체가 있다면 거기 어딘가에 곰여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