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이 깁스하고 싶었을,/ 이은환
따뜻이 깁스하고 싶었을,/ 이은환
새끼손가락 며칠을 욱신거리던 것을 내가 모르는 동안
나는 나와 살짝 금이 간 사이였다
몸 안의 뼈 하나가 깨지는 순간을
내 쪽에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더러
물러나면서 붓고 아프던 비명을 듣지 못했다
그 사이에 약속 하나가 조용히 나를 떠나갔다
미열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찾고서야
그게 금이 간 약속 때문이라는 것을 듣는다
약속에 금이 갔는데 왜 열이 나나요
의사의 미소는 볼 때마다 미열 같아서 여전히 나만 모르겠고
내게서 나를 견디며 살면서도 따로 버티고 있었을
균열은 의사에게 와서야 펑펑 운다
울고 난 다음날, 뼈마디 마음껏 부어오르기도 했었을 라나
그 시간 지나도록 꺄우뚱 남아 있는 추위의 시간에게
조금 늦어 잠시 기대라고 지지목을 대 준다
굽는 것이 더 곤란해진 심지心指,
여전히 약속 하나 하자는 듯이
- 『한 권의 책』 수록
* “너하고 나는 친구 되어서 사이좋게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
이 노래는 어린이집에서 전략적으로 가르쳐야 할 노래 중에 하나이지 싶다. 친구를 외롭게 혼자 두지 마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고, 붙어서 시끄럽게 싸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보모로서의 바람도 있을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꼭꼭 걸었지만 사이좋게 지내고 안 지내고는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약속을 깨고 다시 새끼손가락을 태연히 거는 걸 숱하게 반복하지만 차츰 상대와의 약속은 줄어들고 약속을 깼을 때의 후유증은 커진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약속을 스스로 던져두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위 시의 화자는 뼈에 금이 간 사실과 약속에 금이 간 사실을 연결시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단다. 약속의 무게에 따라 후유증도 다를 텐데 ‘붓고 아프던 비명’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금 자체보다 금간 데서 비롯된 열이 이제 더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화자는 펑펑 울어버리는 것으로 열을 내려놓는다. 굳이 의사 앞에서 울게 된 것은 자신을 전혀 모르는, 또 앞으로도 그럴 성싶은 삼자이면서도 금 간 사실을 알아주는 존재였기에 그랬을 거다.
살다보면 금이 간 사실을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을 것이다. 상처를 인정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안의 상처일수록 감추면 덧나기 쉽고 내놓으면 아물기 마련이다. 삶이 삐걱할 때 지지목도 대고 깁스도 해서 호강을 해보자. 화자는 장난스럽게 심지心指를 들었지만 심지心地는 편안해 보인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