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일화(ㅂ-ㅇ)

박재삼(1933-1997, 일본 동경-->경남 삼천포)

톰소여와허크 2010. 8. 30. 15:38

박재삼(1933-1997, 일본 동경-->경남 삼천포)

 

박재삼은 가난 속에서 성장한 시인이다. 박재삼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동경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해방이 되자 삼천포로 돌아와 역시 막노동을 했으며, 어머니는 골목골목을 돌며 새우젓 장수를 했다. 머리가 영리한 편이었던 박재삼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주 중고등학교 급사로 들어가서,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때마다 '땡땡땡' 종을 쳤다. 종을 치고 나서 드넓은 운동장을 돌 때도 있었고, 유리창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강의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교장선생이 "재삼이 니도 영어 공부하고 싶나?"물었다. 놀란 박재삼은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했다. "그라모오, 종을 빨리치고 교실 뒤로 가서 공부하고, 끝나기 전에 벌떡 일어나 나와서 종을 치거라." 다음날부터 박재삼은 종을 친 뒤 교실로 달려가고, 수업이 끝나기 전에 교실을 달려나와 종을 치는 분주한 생활을 했다. 그의 성적은 뛰어나 시기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부러워하는 친구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눈길에는 언제나 드넓은 운동장이 들어왔다. 그 운동장에는 포플라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고 햇볕이 가득했고 새우젓을 팔러 다니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서렸다. 시인으로 등장하여 현대문학상을 받은 뒤 어느 날, 그는 라디오에 출연하여 그 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종소리도 영어 단어도 슬프기만 했어요. 넓은 운동장의 저녁 햇볕도 슬펐어요. 그 슬픔 때문에 시를 쓰게 됐던가 봐요."

 박재삼은 고려대 국문과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현대문학사에 들어갔다. 현대문학사는 당시 하나뿐인 문예잡지사로, 한국문학의 중심역이라 해도 되었다. 수많은 중견문인들이 들락거렸고 신인들도 오고갔다.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등은 이곳에 살다시피 했다. 그중 서정주는 원고료를 받을 때마다 눈짓으로 은근히 박재삼을 불러 내어 술집으로 향했다.

 어느 늦가을날 술집 문을 밀고 들어서던 서정주는 , 주모가 마루에서 이불 홑청을 갈아 끼우는 것을 보고 "아주먼네, 세상이 아주 찬란하네요!" 했다. 박재삼은 그 말이 매우 인상 깊었던 듯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했다. 박재삼은 술자리에서 싸우던 이야기도 종종했다. 대취 상태에서 서정주는 박재삼에게 시를 뭐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박재삼은 "우리 어머니 말씀이 노래 즉 시는 진실이고, 이야기 즉 소설은 거짓말이라 하대요."라고 말했다. 서정주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뭐라고? 시가 거짓말이라고? 내 시가 거짓말이란 말이지?"

 서정주는 문을 차고 나가 버렸다. 다음날 서정주는 자신이 실수를 범한 줄 알고 박재삼을 집으로 불러 또 술잔을 주고받았다. 박재삼은 서정주를 존경했고 서정주도 박재삼을 시인다운 시인으로 여기며 좋아했다.

 그 무렵 원고료는 술값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매일 밤 술집을 전전했다. 그들은 열에 들뜬 목소리로 선배 작가들이 작품을 비판하는가 하면 동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욕질했다. 얼마나 욕질을 심하게 늘어놨던지 다음날이면 말문이 막혔고 욕질의 대상이 되었던 친구의 주변을 피했다. 박재삼은 친구들의 시나 소설을 욕하는 성질은 아니었지만 술자리를 피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는 막걸리나 소주를 가리지 않고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진실인기라. 우리 어마이가 노래를 잘 하면 극락에도 발 디딜 수 있다고 했는기라."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더욱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런 노래와 술 때문에 그의 오른 소매 끝은 닳아 실밥이 보였고, 세탁소에서는 그의 옷에다 '박재삼'이란 이름 대신에 '술아저씨'라고 써 붙였다.

 "아저씨, 내가 어째 술아저씬기요?"

 "날마다 술에 취해 돌아오니까요."

 하지만 박재삼의 시는 술 이야기도 아니고 서울 이야기도 아니었다. 여전히 가난을 노래했고 진주 사투리를 애용했다.

 술 때문에 박재삼 시인은 세 번 쓰러졌다. 뇌졸중으로였다. 죽기 1년 전쯤 나는 어느 결혼식장에서 박 시인을 만났다. 손을 마주잡고 "건강 어떠세요?" 물었더니 "괜찮아." 한마디 하였다.

 "술은요?"

 "하루 한 병쯤 마시지."

 "반만 드세요. 건강해야지요."

 "건강만이 제일인가, 술도 좋은 것이지."

 그리고 그는 내 앞에서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최하림, 시인을 찾아서, 프레스21. 199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