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1536 중종31년-1593 선조26년, 서울)
정철 (1536 중종31년-1593 선조26년, 서울)
정철의 집안은 큰 누이가 계림군(인종(仁宗)의 사촌)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어린 정철이 왕궁(王宮)을 자주 드나들며 뒤에 인종(仁宗)의 뒤를 이어 명종(明宗)이 될 경원대군(慶原大君)과 친숙하게 지내기도 한 이름난 가문이었다. 하지만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연루되어 정철 집안에 화가 미쳤다. 정철의 맏형은 죽고 아버지는 관북지방인 청평으로 귀양을 가게되는데, 이후 5년간을 어린 정철(鄭澈)은 아버지의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그의 아버지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그가 16세인 1551년(명종(明宗)6년)인데 그 길로 자연에 묻혀 살기로 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라남도(全羅南道) 창평(지금의 전라남도(全羅南道) 담양군 창평면)으로 내려갔다. 그간 유배 생활로 잃었던 소년시절의 화려한 꿈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곳 성산(담양)의 자연 풍경과 성산 앞을 흐르는 죽계천인 일명 송강(松江)의 도도함은 그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절을 사로잡았고 훗날 '송강(松江)'이라는 그의 호를 낳게 되었다.
송강정과 식영정 등을 오가며 심신을 위로받고 휴식을 취하면서 불후의 명작을 낳은 송강이기에, 어린 시절 학문과 문학을 익혔던 창평이야말로 그에게는 소중한 문학의 모태라 할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실의하여 낙향한 곳이기도 하지만 울분을 달래며 재기의 의지를 불태웠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훗날 당쟁의 와중에 '정여립 모반죄'를 치죄하면서 수많은 전라도의 인물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역사적으로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호남 사람들에게 송강은 한편으로는 몹쓸 사람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랑거리이기도 한 이중적인 존재이다.
어쨌든 54세 때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동인이 실각하자 정철은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동인을 치죄하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서인의 집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56세 때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혼자서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하다 신성군을 염두에 두고 있던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되었다.
이때 선조는 정철을 향해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졌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며 그를 파직시켜 유배보낸다. 선조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철은 주색을 즐겼던 모양이다. 한때 이이도 그에게 '제발 술을 끊도록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없애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그는 술을 좋아했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취기를 바탕으로 빼어난 산문과 절편의 시들을 뽑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배된 그는 진주와 강계 등에서 이배되었다가, 57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풀려나 평양에서 왕을 맞이하여 의주까지 호종하기도 했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의 체찰사를 지내고, 다음해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그러나 동인의 모함으로 다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에 우거하다가 1583년 58세를 일기로 죽었다.
정철은 인간의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풍류인이요, 타고난 재인이었다. 그의 인간적 체취는 술 관련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술과 관련된 노래 가운데는 [장진주사](將進酒辭)가 가장 주목된다.
[한 잔(盞) 먹사이다 또 한잔 먹사이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사이다./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
(풀이: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자 먹세그려 꽃을 꺾어 셈하며 다함 없이 먹세그려/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졸라 메어 가거나, 좋은 상여에 만 사람이 울며 따라 가거나, 억새와 속새와 떡갈나무와 백양 숲 속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에 회오리바람이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고 할꼬./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들이 휘파람을 불며 놀 때 가서야 뉘우친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권주가(勸酒歌)라고 할 수 있는 데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고 죽으면 거적에 덮여 묘지에 갈 뿐이니 후회없이 술이나 먹자고 권유하고 있다. 아마도 송강이 50세에 벼슬길에서 물러나 창평에서 실의와 울분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재너머 성궐롱 집의 술 익단 말 어제 듣고/누은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아해야 네 궐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호주가인 송강이 성혼의 집에 술 먹으러 가는 장면을 노래한 것으로서 흥겹고 진솔한 작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남산뫼 어다메만 고학사 초당지어/곳두고 달두고 바회두고 믈둔난이/술조차 둔난양하야 날을오라 하거니.]
송강이 고경명의 초대를 받고 지은 듯한 노래로 역시 호주가로서의 흥겨운 일면이 나타나 있다.
[선우음 참노라 하니 자채옴의 코히새예/반교태 하다가 찬사랑 일홀셰라/단술이 못내괸 젼의란 년대마암 마쟈.]
[인나니 가나니 갈와 한숨을 디디마소/취하니 씨니 갈와 선우음 웃디마소/비온날 니믜찬 누역이 볏귀본 달 엇더리.]
(풀이:남이 있겠느니, 아니 가겠느니 하고 늘어 놓으면서 공연한 수선을 떨며 한숨을 쉬질랑 마오.술이 취하느니, 이제는 술이 깼느니 하고 늘어 놓으면서 선웃음일랑 치지 마오.차라리 비오는 날 걸치는 도롱이나 내어다가 햇볕도 쏘일겸 대작을 하면 어떨는지? 도롱이야 설마하니 가겠노라 하면서 수선을 피우지는 않겠지.)
술을 보고서 반가워하는 노래이다. 사실적 묘사와 함축미, 해학미가 잘 드러난다.
시가에서 취흥이 잘 나타난 부분은 <관동별곡>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명사길 니근말이 취선을 빗기시러 바다할 겻태두고 해당화로 드러가니 백구야 나디마라 네 벗인 줄 엇디아난.]
명사십리 해당화 속으로 들어갈 때의 광경으로 자신을 취선에 비겼다. 술과 자연에 도취되어 비스듬히 말에 실려 비틀대면서 갈매기를 보고 벗을 하자고 말하지만 갈매기는 벗이 되어 주지 않는다.
[뉴하주 가득부어 달다려 무론 말이 영웅은 어대가며 사선은 귀 뉘러니, 아모나 만나보아 넷긔별 뭇쟈하니 선산 동해예 갈길도 머도멀샤.]
송강은 유달리 술을 좋아하였고 이 취흥 때문에 신선의 세계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고, 시가의 세계도 넓어졌다. 북두성을 기울여 창해수를 부어내는 선천적인 호기는 유교가 모든 제도를 지배하던 당시에도 그의 시가 세계를 신선의 세계로까지 이끌었다. 윗구절에서는 뉴하주를 가득 부어 마신 다음 흐뭇한 기분으로 영웅과 사선의 기별을 묻는 송강의 풍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한시에서도 취흥은 많이 나타난다.
[산촌에 술이 막 익었는데/천리 길에 친구가 왔도다./촌심 얘기해도 다함이 없고/정원 나무엔 석양을 재촉한다.//오랜 병에 사귐을 폐하니/사립문에 눈 바람이 두들긴다./산간에 좋은 일 생겼으니/해는 저물고 술은 항아리에 가득하네] <대점봉최희직기2수(大岾逢崔希稷棄二首)>
눈바람이 쓸쓸히 날리는 산촌에서 병고에 시달리면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모처럼 벗이 찾아와 술로서 회포를 푸는 정경이 따사롭기만 하다.
[저녁 달이 술잔에 거꾸러지며/봄바람이 내 얼굴에 뜨도다/하늘과 땅 사이 한 외로운 칼을 차고/길게 휘바람 불며 다시 누에 오르도다.] <대월독작(對月獨酌)>
교우만이 벗은 아니다. 송강에게는 모든 것이 다 벗이다. 칼을 차고 누에 올라 홀로 달과 마주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송강의 호기가 드러난 시다.
[동강이 보내준 국화주를 보니/색깔은 가을 물결처럼 맑아서 멀리 빈 것 같네/새벽에 산을 대하여 한 잔을 드니/앉아있는 여왼 몸에 봄바람이 이네] <동강송주(東岡送酒)>
새벽에 일어나서 설산을 대하고 맑은 술을 마시는 선비의 모습. 이 술은 단순한 취흥의 경지를 넘어서 냉엄과 지조를 지나 구도적인 자세로까지 승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이 정자에 오르더라도/구름은 즐기며 술은 즐기지 않네/좋아하고 싫어함이 다 다른데/술을 즐기는 자는 나와 주인뿐이네] <열운정(悅雲亭)>
사람들은 모두 열주를 못하고 열운을 하는데 시인만은 유독 열주를 한다. 이것은 열주를 통하여 열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을 살피는 혜안이 있다.
[꽃은 시들어도 붉은 작약이요/사람은 늙었어도 정돈녕이라네/꽃도 대하고 술도 대하니/의당 취하고 깨지 말아야지] <대화만음(對話漫吟)>
지는 꽃과 늙어가는 인생을 대비시켜 자학적인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로서 모든 무상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술에나 취해 보자는 간절함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