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천국의 아이들'과 '북경 자전거'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09:10

글 작성 시각 : 2002.02.25 23:52:06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초등학생 알라와 자라가 숨가쁘게 달음박질을 한다. 오전반인 동생 자라가 너덜한 운동화를 벗어주면 오후반인 오빠 알라가 잽싸게 받아신고 학교로 전력 질주한다. 그래도 지각을 면하기 힘들다. 두 남매에겐 학교에 신고 갈 운동화가 하나밖에 없다.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정직한 분이었지만 가난했다. 신발 사 달라는 얘기를 꺼낼 수 없다. 그래서 집에서 학교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덕분에 폐기능이 좋아졌는지 알라는 전국 학생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다. 하나도 안 기쁘다. 삼등을 해야 운동화를 선물받아서 여동생에게 줄텐데, 눈감고 뛰는 바람에 일등을 해버렸으니. 허탈하다.
중국의 수도 뻬이징에서 배달부 직원 구웨이와 고등학생 지안이 자전거 한 대의 소유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다. 구웨이는 도둑 맞은 제 자전거가 분명하고, 지안은 집에서 훔친 돈이었지만 분명히 요금을 치르고 산 자전거이다. 시골 출신의 구웨이에겐 자전거가 안정된 직장을 보장하는 생존의 수단이었고, 가난한 집의 지안에겐 자전거가 자기존중과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지안은 자전거가 있어야 떠벌릴 수 있고, 여자친구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마침내 구웨이와 지안은 자전거를 하루씩 번갈아 소유하는 것에 합의한다. 불안한 소유관계는 지안의 돌출행동으로 끝난다. 연적에 대한 지안의 어설픈 응징은 되려 화를 불러 지안 뿐만 아니라 구웨이까지 폭행을 당하고, 자전거도 엉망이 된다. 자전거 살 하나가 꺾여지는 것이 구웨이 자신의 뼈가 부숴지는 것 같다. 결국, 자전거를 부숴뜨리는 녀석을 구웨이가 짱돌로 해치운다. 구웨이는 절뚝거리며 뻬이징 도심지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망가진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천국의 아이들>과 <북경 자전거>의 기본구조는 비슷하다. 아이들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통학길을 내내 달리는 것이나,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번갈아 타고 큰길과 골목길을 분주히 달리는 것이 그렇다. <천->이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과 더러운 또랑물이 흐르는 좁은 골목길을 대비시켰다면, <북->는 대낮에 호텔에서 안마 받는 사람과 쭈뼛거리며 곤욕스러워 하는 배달부를 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물결이 테헤란과 뻬이징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한 소외가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 삶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할진대, 이를 화면으로 보여주고 경계한 것이 두 영화가 갖는 큰 미덕이라 하겠다.
두 영화의 인물 중 현실적인 쪽은 뻬이징의 젊은이들이다. 선량하지만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구웨이나 우울하고 냉소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지안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들의 성격과 삶이 현실의 그것을 너무 닮아서인지 좀 지루한 감도 있다.
이에 반해 테헤란의 아이들은 매력이 넘친다. 지상의 아이 같지 않고 천국의 아이 같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재미는 그만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검은손이 알라를 언제까지 천국에 놓아둘지 의문이다. 답답한 구웨이나 자기중심적인 지안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청년 알라로 커 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친구들에게 <천국의 아이들>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