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개미
글 작성 시각 : 2002.09.28 01:21:28
어릴 적에 개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불행을 안겨주었다. 집 뒤 야산의 개미집을 한참동안 지켜본 다음 언젠가부터 파헤치기 시작했다. 날개 달린 개미를 본 것도 그때였다. 물론 여왕개미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날개 달린 개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여왕에게 손을 댈 용기는 없었지만, 대신 일반개미(검은개미)를 잡아서 빈깡통에 가두었다. 더러는 깡통 속에서 질식하거나 굶어죽었고, 더러는 연탄불 근처에서 타죽기도 했다.
개미집을 초토화시키고 며칠 후 그 자리에 가면 놀랍게도 개미집이 온전히 복구되어 있었다. 파헤치기를 두 세 번 더 하다가 그만두었다. 개미집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진 탓인지, 개미에 대한 미안함에서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런 놀이도 했던 기억도 어슴푸레 난다. 개미를 잡아서 팔꿈치 안쪽 부분에 끼우고 조금씩 조금씩 안으로 조이는 것이다. 일정 부분 압박을 가하면 개미가 살을 물게 되어 있었다. "아, 따까워"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을 벌리게 되고, 바닥에 떨어진 개미는 몸을 비틀거리며 지옥에서 멀어져간다. 이제 개미의 생사는 관심 밖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상처였다. 개미에게 물린 부분은 곧 부어올랐다. 가장 크게 부어오르는 애가 그날의 대장이 되는 놀이였다. 지금의 나라면 백번이라도 대장을 양보하겠지만, 그때는 열심이었다.
'잔디 숲속의 예쁜이'라는 동화책을 읽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개미를 소재로 한 동화인데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 마약에 중독된 개미가 있다는 걸 알았고, 마약이 삶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날개 달린 개미가 여왕개미인 것을 알았고, 여왕이 되기 위해서는 신혼여행을 갔다와야 하는 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동화책 속의 예쁜이는 여러 모험을 거쳐 훌륭한 여왕개미가 되었다.
이 후 오랫동안 개미를 잊고 있다가, 서른을 넘을 즈음 '개미'라는 영화를 보았다. 일개미 하나가 여왕개미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다가 쫓겨났다. 고독과 방황 그리고 모험과 결단을 통해서 더 강해진 일개미가 마침내 반란자를 제압하고 개미왕국의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개미와의 만남은 오늘 민방위 교육장까지 이어졌다. 민방위 교육받으러 갔다가, 그동안 질질 끌어오던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 작)를 마저 다 읽었다.
개미는 냄새를 분비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면 개미의 냄새를 분석하면 개미의 언어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소설은 시작되고, 흥미진진하게 엮이어 간다. 지구는 인간의 세상만이 아니라, 개미의 세상이기도 하다. 개미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다른 무엇을 이해하는 일이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다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함을 <개미>를 읽는 독자는 깨우치게 될 것이다.
민방위 대원의 신조 1번을 보니, '우리는 굳게 뭉쳐 내마을 내직장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라고 쓰여 있다. 이 신조를 다음과 같이 고치자고 건의하고 싶다. '우리 서로 이해하면서 내마을 내직장을 사랑하는 일꾼이 된다'로. 다음엔 민방위 교육에 절대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