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름다운 집
글 작성 시각 : 2002.12.14 00:13:59
손석춘, <아름다운 집>, 2001, 도서출판 들녁.
<아름다운 집>은 신문사 편집국에 일하는 '나'가 어느 혁명가의 일기를 공개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주인공 이진선의 일기는 열 여덟 살(1938년) 청년부터 일흔 여덟 살(1998년) 노년까지 굴곡 많은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젊어서 이진선은 박헌영과 이현상을 따르고 싶어하는 사회주의자였으나, 그들이 숙청당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타협적인 인간이기도 했다. 아내와 아들이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숨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하는 아픔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광장>의 '이명준'과 꽤나 닮았다. 관념적 지식인으로서 남한과 북한 어디에서도 자기가 꿈꾸는 사회를 만나지 못하고, 결국 바다에 투신 자살해야 했던 비극적 인간. 이명준이 감상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면이 많다면, 이진선은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으로 와닿는다. 다만,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결의하고, 또 반성한다는 점에서 둘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진선은 인민보다 당을, 당보다 개인 우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내면적 갈등이 깊어진다.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 비판을 수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혁명이 신기루가 되어감을 이진선은 뼈아프게 바라본다. 잠든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진선은 권총을 든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아껴둔 선물(?)을 알지 못한 채 이진선은 죽었고, 혁명은 아직 오지 않은 동지의 몫으로 남았다.
모두가 잘 사는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 혁명은 있었고, 혁명가가 있었다. 모두가 잘 사는 아름다운 집! 주인공 이진선의 꿈이고, 작가 손석춘의 꿈일 것이고, 독자 모두의 꿈일 게다.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꿈이 없는 삶을 견디는 것보다 힘든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