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김봉두
글 작성 시각 : 2003.04.07 23:50:41
김봉두는 돈봉투를 좋아하는 선생이다. 아버지 입원비 마련이라는 설정을 깔아두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답지 않은 선생이다. 학부모 한 분은 김봉두가 선생답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술을 사고 돈봉투를 마음 편하게 건네주었다.
그러다가 또다른 학부모의 진정으로 김봉두는 시골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또랑을 건너고 또 건너고,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또 지나서 분교에 도착했다. 전교생이 다섯 명이었다. 그 아이들의 시커먼 눈동자를 보며 김봉두는 자기불행과 연민에 쌓여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자기버릇 남 못준다는 말처럼 김봉두는 봉투를 학생들에게 하나씩 건네는 뻔뻔함을 보인다. 하지만 김봉두에게 돌아온 것은 돈이 아니라,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쓴 편지였다. 김봉두는 절망한다. 김봉두가 그다지 밉지 않다면, 그건 오로지 인물의 과장된 행동과 표정 때문일 게다.
그랬던 그가, 자기 부끄러움까지 감싸주는 학생들의 한결 같은 마음씨에 감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부당한 교사상을 떠올리며 자기반성에 빠져들었다. 이후 단 한 번의 거센 소나기 속에 이루어진 제자와의 만남으로 인해 참된 교사가 된다는 얘기는 억지에 가깝지만 실망스런 것은 아니다. 김봉두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영화가 끝나기 전에 나타난 것을 관객은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는 돈봉투를 받는 김봉두와 돈봉투를 거절하는 김선생을 단순 이분법으로 구분해서 다수의 김선생이 피해자 의식을 갖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봉투보다 편지봉투와 정에 굶주린 교사들에게 이 영화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옛날 가정방문이 있던 시절, 할머니는 담배 몇 갑을 신문지에 싸두고 선생님을 기다리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서로에게 불편한 관계였음이 틀림없다. 얼마간의 불편함과 긴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돈으로 사는 것보다 백배 나을 것이다.
'선생답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교육에 대한 정열과 제자에 대한 애정으로 무장된 사람일까? 주변머리 없이 꽁해 있는 사람일까? 둘 다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