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차 한 잔의 인연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1:10

글 작성 시각 : 2003.07.03 23:32:20

김창배, <차 한잔의 인연>, 솔과학, 2003.

'차(茶) 한잔의 인연'. 제목과 그림이 그럴 듯해서 책을 샀다. 저자는 차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혼자 마시는 차보다 여럿이 어울려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시는 차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국의 차 모임을 쫓아다녔고, 거기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첫 기록은 정약용 선생을 시로 노래했던 정일근 시인과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밤 깊도록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려본 것이다. 이 글의 끝도 정약용 선생과 관련이 된다. 선생이 쓴, '음주망 음차흥'(飮酒亡 飮茶興, 차를 즐겨 마시는 백성은 흥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백성은 망한다)이란 글로 끝맺음을 대신한다.
'음주망'은 술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다소 언짢은 표현이다. 차는 매일 마셔도 좋지만, 술은 매일 마시면 몸과 마음이 상한다는 말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스쳐 가는 인연을 하나하나 짚는 저자의 손길엔 따뜻한 인정이 묻어있으나, 왠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상하고 선(禪)적인 세계보다는 질척하고 땀내 나는 현실을 존중하는 내 의식이 공감적 읽기를 방해하는 것 같다.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는 닭똥집 골목에서 소주잔을 비우며 나누는 게 제격이다.
나는 차를 매일 마시지만, 차 애호가는 아니다. 밍밍한 냉수 내신에 차 잎을 띄워 마신다. 혼자 마시니까 인연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차 맛을 깊이 알게 되어, 차 마시는 일이 더 없는 기쁨이 된다면, 기꺼이 남과 함께 차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다.
차에는 구덕(九德)이 있다고 한다. 머리를 맑게 하고, 귀를 맑게 하며, 눈을 맑게 하고, 밥맛을 돋구고, 술을 깨게 하며, 잠을 적게 하고, 갈증을 멈춰주고, 피로를 풀어주고, 추위나 더위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한때 달게 마셨던 커피, 아침 대용이었던 라면, 죽자고 마셨던 술에는 어떤 덕이 있었는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