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황산벌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1:26

글 작성 시각 : 2003.11.02 20:55:54

중과부적이란 말이 있다. 적은 수가 많은 수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오만 군사와 계백이 이끄는 백제 오천 군사와의 싸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계백의 오천 결사대는 꽤 버텼다. 처와 자식을 목베고 나온 계백의 결연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훗날 역사는 승장 김유신 못지 않게 패장 계백을 높이 평가한다. 백제 의자왕의 쓸쓸한 최후에 비하면 계백은 단연 돋보이는 면이 있다.
영화 '황산벌'은 계백의 결사 정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왕의 명을 받들어 계백은 전쟁에 나서지만 이미 국운이 기울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계백은 최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점을 되뇌며 계백은 아내와 자식에게 죽음을 강요한다. 아내는 죽기를 거부한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고, 그 이름 때문에 죽게 된다고 아내는 항변하다. 당신이 목숨을 거두어 갈 자격이 있느냐고 따지는 계백의 아내는 전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다. 계백의 비장한 선택에 묻혀 생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아내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쟁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천 결사대 중 살아남은 한 명이 고향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는 모습에서 조금 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한 편의 희극처럼 느껴질 뿐이다.
화랑 관창에 대한 새로운 조명도 그럴 듯했다. 계백에게 목숨을 두 번이나 빚지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관창은 신라군의 사기를 드높인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관창을 전략에 따른 희생양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계백이 처자식을 벤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미덕이다. 다만 무얼 위한 전체인지를 생각하면 좀 복잡해진다. 전체를 따르는 것을 윤리라고 한다면, 전체를 의심하는 것이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계백은 윤리적 인간이었지만 철학적 인간은 아니었다. 전체를 의심하면서 조화를 꾀하는 것이 건강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황산벌'엔 개인은 없고, 개죽음만 그득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