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콩나물 시루
글 작성 시각 : 2003.11.27 23:06:16
양명호, <콩나물 시루>, 징검다리, 2002.
'콩나물 시루'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단편이다. 눈 먼 어머니가 딸의 학비에 보태기 위해 콩나물을 키운다. 동사무소에서 쌀을 얻어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우리가 거지냐고 딸은 새된 목소리를 낸다. 딸의 자존심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얼마 후, 딸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며 어머니를 느낀다.
콩나물은 슬픔을 먹고 자라지만, 훌쩍 잘도 자랄 것이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슬픔을 차곡차곡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루에 든 물처럼 자꾸 새어버리기 때문에 그걸 못 느끼고 있을 뿐이란 생각을 해본다.
'설날'은 잘 나가는 형을 죽음으로 내몬 막내가 어머니로부터 버린 아들 취급당하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막내와, 그 막내를 끝내 끌어안는 어머니의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유행가사가 생각난다.
'봉구총각' 이야기도 아릿한 슬픔에 젖게 한다. 봉구는 벙어리 처녀와 결혼식을 치르고 그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벙어리 처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식당에 붙박혀 봉구를 기다리고, 봉구는 점점 의식을 잃어간다. 이들의 사랑을 어찌할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책을 덮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의 후기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사랑에 대해 어깃장 놓는 심정으로 만들어진 소설집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사랑했던 여자는 그가 가난한 글쟁이란 점 때문에 아주 떠났다. 그 덕에 작가는 미친 듯 소설을 썼으니 떠난 여자에게 고마워 해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