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현의 노래
작성 시각 : 2004.07.09 18:52:46
김훈, <현의 노래>, (주)생각의 나무, 2004.
서점에 들러 <칼의 노래>를 뒤적이다, <현의 노래>을 잡고 말았다.
신라 장군 이사부, 가야 대장장이 야로, 가야 악사 우륵.
이 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통일과 그에 따른 큰 평화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전쟁터를 누볐던 신라 장군 이사부가 있었다. 그의 칼은 냉정했다. 승리를 위해 기다릴 줄 알았고, 항복해온 적에게도 뒷일을 생각해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늙어 죽었다.
쇠를 두드려 무기를 만들어 나라에 제공했던 대장장이 야로가 있었다. 튼튼한 갑옷과 날카로운 도끼와 칼을 함께 만들었다. 야로는 왕과 조국보다는 쇠의 흐름을 좇았다. 가야와 신라와 백제를 넘나들며 무기를 제공했다. 도움을 주었던 신라 이사부에 투항했으나, 이사부는 야로를 믿지 않았다.
고을의 여러 소리를 모아서 나라의 소리를 내고자 했던 악사 우륵이 있었다. 우륵은 왕의 연회와 왕의 무덤 앞에 불려나가 춤을 추고 현을 켜고 노래를 했다. 우륵은 멸망하는 가야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결국, 신라에 투항을 했고, 이사부는 우륵을 받아들였다. 우륵은 생각했을 것이다. 악사에게 음악 이상의 가치는 없으며, 조국 때문에 음악을 포기할 순 없다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그 인생을 넘어서는 예술이 자기 것이 아니듯이, 조국을 떠난 예술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륵의 가야금은 가야인이 아니라 신라인에 의해서 전수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예술은 조국을 초월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처럼 어리석고 난감한 일도 없다. 조국도 조국 나름이고, 예술도 예술 나름이라고 말하는 게 속 편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대장장이는 튼튼한 호미, 날카로운 칼을 만들면 그만이다. 연장을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될 뿐이다. 훌륭한 악사는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하면 된다. 물론, 그런 음악이 세상에 대한 고민 없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진정한 예술인은 현실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