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3:46

글 작성 시각 : 2005.01.25 21:53:08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문학동네, 1998.

그녀(소설 속 화자-진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둘로 분리하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견디어 왔다. 전작으로 보이는 『새의 선물』을 보면, 그녀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신을 분리할 줄 아는 애어른이었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고 했다. 실성해서 목매 죽은 어머니와 자신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 주위의 수군거림 등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자아 분리법은 아주 적격이었다. 아버지는 돌아왔지만 그녀에게 삶은 여전히 우호적이지 못했다.
이어지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도 그녀는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내 겉돌다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한다. 이런저런 상처를 견디는 방법은 예전과 똑 같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 사이에 거리두기이다. 결국, 어릴 때 가졌던 자아 분리법이 그녀 인생 전반을 지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가 발견한 자아 분리법은 상처를 견디고 고통의 무게를 더는 데 유용했다. 하지만 얻는 것 이상으로 잃는 것도 많아 보인다. 늘 분리된 자아는 어떤 사람에게도 전적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게 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열정을 다해서 일하지 못하게끔 작용했다. 삶에 대한 불신이 자신의 전부를 바치게 하지 못하게 제어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발견한 자아 분리법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최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통과 상처는 한 인간이 견디어내야 할 달갑지 않은 선물임에 분명하나, 세상의 이면을 보게 하고, 성숙한 삶을 살게 하는 보너스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과 상처를 인정하고 보듬고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나, 그녀는 그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한 것 같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게 더 이상의 상처가 될 수 없도록 강해져야 함을 그녀는 모르고 있는 걸까.
또한 그녀는 세상을 냉소적 시각으로 본다. 그런 태도야말로 세상을 삐딱하게 봄으로써 그 실체를 더 잘 이해하는 길이었으리라.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미치지 못함을 그녀 아닌 어린 진희에게 속삭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