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봉순이 언니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4:00

공지영, 『봉순이 언니』, 푸른숲, 1998.

봉순이 언니의 삶은 불행했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봉순이 언니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불행이었다면, 어린 짱아(소설 속 화자)가 봐도 사람이 덜 된 세탁소 총각을 좇아나간 것은 스스로 불러들인 불행이었다. 봉순이 언니를 반지 도둑으로 오해하고 닦달했던 어머니가 잘못된 선택에 불을 지른 격이었지만 어쨌든 그 선택으로부터 오는 상처는 고스란히 봉순이 언니의 몫이었다. 한 번 엇나간 운명은 삶을 조롱하듯이 네 명의 사생아만 그녀에게 남겨주었다.
불행의 일정 부분은 그녀 탓이라고 했지만, 작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 하나가 삶 전체의 행․불행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60, 70년대를 식모 혹은 공순이로 살았던 뭇언니들의 삶이 봉순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짱아에게 봉순이 언니는 엄마 이상의 친밀한 존재였지만, 기억은 현실을 지배하지 못하는 법이다. 지하철에선가 우연히 만난 초라한 봉순이 언니를 다 큰 짱아는 모른 체 해버렸던 것이다. 봉순이 언니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든 이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을 읽는 듯하여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