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칼의 노래

톰소여와허크 2010. 8. 31. 15:21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2001.

<칼의 노래>는 왕과 신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왕은 보따리 싸고 피난길에 오르는 쪽팔림을 견뎌야 했고, 신하는 바다에서 적을 무찌르고 전쟁 영웅이 되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일인은 당연히 왕이어야 하건만 신하에게 그 자리를 뺏긴 왕은 속으로 분하고 억울하고 두려웠다. 벼랑으로 내몰린 왕은 신하의 마음을 얻고자 고기 몇 근을 내밀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질서를 다시 잡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명령 불복종은 얼마나 좋은 빌미인가. 분노를 누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신하는 왕의 신하였다. 처음에는 적의 목을 많이 베어 바치는 게 신하의 도리로 생각했다. 하지만 왕이 자신을 두렵게 여긴다는 사실이 적보다 더 두려운 일임을 직감한다. 신하는 고민한다. 명령에 따르는 것도 충이지만, 명령 불복종으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것도 충이다. 신하는 자신의 충을 밀고나간다. 왕은 분노할 명분을 얻었고 분노했다.
신하는 왕을 무너뜨리거나 왕을 꿈꾸지 않는 한, 왕의 신하일 뿐이다. 신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죽음이 신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왕은 진심으로 신하의 죽음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