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죽은 누이의 묘비글/ 박지원

톰소여와허크 2010. 9. 18. 12:25

백매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妹贈貞夫人朴氏墓誌銘)/ 연암(燕巖) 박지원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은 아곡鵝谷이라 하는데, 장차 그곳 서향西向의 언덕에 장사 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방도가 없어,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상자를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골이 나서 울면서 먹으로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 ‧ 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 여덟 해 전의 일이다.
  말을 세우고 강 위를 멀리 보니, 붉은 만장은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 그림자는 물위에 꿈틀거린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이제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구나.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어뜨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 언제나 이별과 근심, 가난이 심해 꿈결처럼 덧없이 지났다. 형제로 지낸 날들은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던가.


가는 이는 정녕코 뒷기약을 남기지만

오히려 보내는 사람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누나

쪽배 타고 이제 가시면 언제나 돌아올꼬

보내는 사람만 하릴없이 언덕위로 돌아온다.


伯姊贈貞夫人朴氏墓誌銘



孺人諱某。潘南朴氏。其弟趾源仲美誌之曰。孺人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有一女二男。辛卯九月一日歿。得年四十三。夫之先山曰鵶谷。將葬于庚坐之兆。伯揆旣喪其賢室。貧無以爲生。挈其穉弱婢指十。鼎鎗箱簏。浮江入峽。與喪俱發。仲美曉送之斗浦。舟中慟哭而返。嗟乎。姊氏新嫁。曉粧如昨日。余時方八歲。嬌臥馬效婿語。口吃鄭重姊氏羞。墮梳觸額。余怒啼。以墨和粉。以唾漫鏡。姊氏出玉鴨金蜂。賂我止啼。至今二十八年矣。立馬江上。遙見丹旐。翩然檣影。逶迤至岸。轉樹隱不可復見。而江上遙山。黛綠如鬟。江光如鏡。曉月如眉。泣念墮梳。獨幼時事。歷歷又多。歡樂歲月長中間。常苦離患憂貧困。忽忽如夢中。爲兄弟之日。又何甚促也。

去者丁寧留後期。猶令送者淚沾衣。扁舟從此何時返。送者徒然岸上歸。


緣情爲至禮。寫境爲眞文。文何甞有定法哉。此篇以古人之文讀之。則當無異辭。而以今人之文讀之。故不能無疑。願秘之巾衍。仲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