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설 때
알을 깨고 나설 때 / 이동훈
인생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안 것을 더욱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앎에 대한 욕구는 새로운 경험으로 충족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칠 줄 모르는 욕구가 새로운 경험을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직접적 경험의 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왕자의 삶을 누릴 수 없고, 알프스 언덕 위를 달릴 수 없으며, 해적이 되어 보물을 뺏을 수도 없다. 현재에 고립되어 과거로도, 미래로도 나갈 수 없다.
이런 젠장, 하고 미리 낙심하지는 말자. 우리는 백조가 되거나 거지로 전락한 왕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알프스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벌판도, 태백산맥도,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까지도 웬만큼 알고 있다. 처절한 목소리로 복수를 맹서하는 애꾸눈 해적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인생의 폭을 넓혀주는 마력이 바로 책에 있다. 정녕 눈부시고 황홀한 경험이 있다면 그건 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나의 세상 읽기도 독서에서 비롯되었다. 노점상에서 샀던 <톰 소여의 모험>은 지리멸렬했던 유년의 기억에 한줄기 빛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시들지 않는 모험정신을 간직했고, 사랑과 우정과 용기를 배웠다. 무시무시한 인디언 조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범인을 가리키던 톰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로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남들이 물어온다면, 나의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학력고사를 앞둔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고등학교 시절의 위안거리도 책에 있었다. 쏘냐(<죄와벌>), 카츄사(<부활>), 헤스터(<주홍글씨>)를 통해 순수한 영혼을 가진 희생적인 여인상이 각인되었고, 캐서린(<폭풍의 언덕>), 스카알렛(<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통해 도전적이고 정열적인 여인상에 매료되기도 했다.
80년대의 막바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지난날의 열정과 분위기, 그리고 넘치는 자유에 고무되어 휘청거리면서도 신났던 일 년 여를 보냈다. <홍길동전>, <장길산>, <임꺽정>,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객지> 등을 읽으면서, 사회제도의 모순과 이를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보았다. <겨울 골짜기>, <광장>, <태백산맥> 등을 읽으면서 근대사를 편견 없이 보는 시야와 역사의식을 배웠다.
이쯤해서 고백해야겠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자신이 무척 부끄럽다. 게으름이라는 무시 못할 적에게 무장해제 당한 채 신음도 잊고 사는 처지 아닌가. 하지만 ‘나의 병’을 내가 안다는 점은 아직 절망적 상황이 아니라는 증거라 믿는다.
‘새는 알에서 태어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데미안> 중에서) 라는 말을 잘도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부터라도 무디어진 감각을 시퍼렇게 벼리어야겠다. 발버둥질을 쳐야겠다. 오랫동안 내게 주어진 완고한 틀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착각일까.
- 2000년 안성고 교내 신문에 실었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