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무인 오월 초여드레/ 김선굉

톰소여와허크 2010. 10. 22. 12:42

무인 오월 초여드레/ 김선굉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신다

그리운 敦艮齊 대문이었던가 

재실의 문간방에서였던가

<애비야, 이저끔 안 일어놨나?

그만 일어나거라!>

어깨를 흔들어 깨우신다

陰曆 戊寅 五月 初여드레 새벽

꿈인지도 모르고 일어나

전등을 켜서 집 안을 환히 밝힌다

이 방 저 방 아이들 흩어져 자고

어머니 계시던 방 벌써

벽을 발라 낯선데

화장실이며 테라스며 현관까지

마구 헤매며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괜히 생시처럼 내게로 와서

다 잠든 밤 텅 빈 거실에 앉아

눈물 속에서 줄담배 권하신다

- 『철학하는 엘리베이터』 수록


- 짐작하건대 ‘나’란 것은 원래 없는 것이며, 있다고 해도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원자였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놀랍게도 지금의 ‘나’가 되었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나’란 존재의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이다. 그 위로 끝없이 올라가는 뿌리의 뿌리에 대한 기원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쨌든 이 세상의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존재의 꼴을 지어주신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어떤 인연보다 강하게 맺어져 있다. 게다가 먹이고, 재우고, 살피고, 공부시키고, 놀아주고,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어머니와 오만 정이 다 들었겠다. 그런 어머니도 언젠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시인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시처럼 왔다가 가셨다. 아주 잠깐 사이에 아무개로 불리던 어린 시절과 장성해서 ‘애비’로 불리던 시절이 겹친다.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목소리에 사뭇 이끌린 시인은 꿈에서 깨어서도 어머니를 찾다가 삶과 죽음으로 갈린 엄연한 현실을 환기하게 된다.

  허탈해진 시인은 어머니가 ‘괜히’ 왔다고 응석을 부리듯 투정조로 말하지만, 이 찰나의 순간을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꾹꾹 눌러 쓰는 것이다. 무인 오월 초여드레라고.(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