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탁본/ 김경성

톰소여와허크 2010. 10. 29. 11:19

탁본/ 김경성


천장에 걸어놓은 종이 등,

물고기 풍경이 매달려 있다

한쪽 벽면에 제 모양의 그림자를 그려놓고

천천히 흔들거리며 탁본을 뜬다

산사 처마 끝 풍경은 얼마나 맑은 소리 뿜어내고 있을까

제 몸 걸려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여도

사람의 마음 끌어당겨 지느러미 위에 걸쳐 놓는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야 했던

습한 마음 헤아려주는 물고기 풍경

등뼈 내리치는 불빛 아래 앉아서

내 몸도 탁본을 뜬다

몸 열어서 무언가 내밀하게 섞을 수 없었던

완강하게 서 있는 벽

이제 적막하지 않다

탁본 속에서 빠져나온 물고기

지느러미 흔들거리며 떠다닌다

물고기 풍경이 있는 찻집,

천장까지 바닷물 찰랑거린다

젖은 옷자락이 달라붙어서 마음마저 젖어든다


- 『와온』수록



* 비석이나 바위에 새긴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떠낸 것이 탁본이다. 그러니 원본을 베낀 복사본인데 오히려 원본을 더 잘 알게 해줄 때가 많다. 원본을 잘 읽어낼 수 없는 이유는 실금이 가거나 주름이 잡히거나 표면이 패기도 한 것이 한눈에 들어올 리 없기 때문이다. 겉에 보이는 것도 그러할 것인데 내면의 결은 천 갈래 만 갈래 더욱 복잡하기만 할 것이다. 마음 한 컷을 탁본해서 원본을 이해하는 재주가 있다면 좋겠는데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시인은 찻집에 매달린 물고기 풍경이 만든 그림자를 보고 탁본으로 생각한다. 그 탁본을 오래 응시하니 거기서 산사의 풍경 소리도 들리고, 그 소리가 자신의 몸에 자꾸 부딪치는 걸 느낀다. 처음에는 내면의 벽으로 인해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차츰차츰 몸이 열리고 소리는 몸을 통과한다.

  물고기 풍경이 탁본으로 자유를 얻었듯이 자신의 몸도 탁본을 뜨기 시작한다. 내면의 습한 자아를 밖으로 끌어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작업이다. 습한 것을 서늘하게 말리고도 젖어드는 마음은 이전과 다른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제 나도 나를 ‘탁’ 뜨러 어디든 가고 싶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