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무협지를 읽으세요

톰소여와허크 2010. 11. 8. 12:54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dokken0109

 

무협지를 읽으세요 / 이동훈

 

 


   삶이 길다고 푸념하지 마시고 그런 날엔 무협지를 읽으세요. 재미는 기본, 생의 비결은 덤이라지요.

 

   첫머리에 등장하는 센 수염과 팬 주름의 노인을 만났나요. 칼로 일가를 이룬 뒤 칼을 걱정하다가 칼에 맞는 운명이죠. 칼끝은 노인의 아들마저 겨누어 벼랑으로 밀지만 죽지 않는 건 아시죠. 바닥은 새로운 기회인걸요. 전설의 고수를 만나 절정의 무공을 익히며 애송이 티를 벗죠. 우연의 남발이라고요. 설마, 누군가의 도움 없이 당신이 예까지 왔다고 생각하진 않겠지요. 복수의 일념으로 진도를 쓱 빼는 중에도, 악당의 칼 솜씨가 만만찮고 악당을 닮지 않은 딸로 인해 일이 꼬이기도 해요. 마음 가는 대로 칼이 움직인 뒤에야 정리될 것만 정리되죠. 어때요, 기대에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 맹하다고요? 언제든 지나친 기대가 말썽인걸요. 신물 나는 선악의 이분법이라고요? 골머리 앓을 일 없이 단순한 게 좋지 않겠어요. 아직, 마지막 매듭이 남았네요. 함부로 칼질하는 세상을 끝내려면 누군가는 칼을 멈춰야 해요. 두 동강 난 칼, 그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악당과 그의 딸로부터 주인공이 점점 멀어지면서 고전은 완성되지요. 이런 선택이 개운하지 않나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면 용서받지 못할 악당이 뒤를 노려 찌르기 자세로 들어가는 건 어떤가요. 악당의 딸이 주인공 대신 칼 맞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너무 상투적으로 슬퍼서 도리어 기억에 남을 거예요.

 

   칼, 칼 하는 세상에 한 칼 하는 생의 비결을 얻으셨나요? 다 들었잖아요. 뻔한 이야기를 싫증 내지 않는 거예요. 삶이 아직도 심심한가요? 무협지 한 권 읽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