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녹동서원에서

톰소여와허크 2010. 11. 21. 13:23

 

 

사야가 혹은 김충선 / 이동훈

 

 

임금의 성()이 갈리면 역성혁명이니

장군의 국적과 성을 바꾸는 일도 자기혁명쯤은 되지.

 

혁명 소문이 도는, 우미산 자락 녹동서원

임진년에 조총 부대를 이끌고 바다 건너온 사야가는

스스로 조선에 투항하여

부득불, 어제의 동지에게 조총의 총구를 겨누지.

이런 비운을 무릅쓴 것은

침략 전쟁의 영웅 대신 평화의 첨병이고픈 마음에서이지.

이쪽이든 저쪽이든 임금을 향한 충()은 아닌데

오지랖 넓은 군신들의 챙김으로

사야가는 김해 김씨 성에다 충선(忠善)이란 이름까지 받지.

사야가에서 김충선으로

부침이 유난한,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욕이 엇갈린 삶이

이름에 고단하게 앉은 거지.

쇠붙이에 녹을 입히던 세월도 잠시

서로 간에 칼싸움, 입 싸움, 신경전은 언제든 살아나지.

우록리 녹동서원을 찾는 양국 사람들에게

이편과 저편을 묻는 것도

배신자인지 애국자인지 따지지 것도 괜한 일이지.

남풍에 고향을 생각한다는 김충선의 시구를 대하면

먼 여정의 종착지로 선택된 우록리 마을이

바다 저편 고향 마을을 빼닮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사슴 울음소리 듣고 문을 빠끔 열라치면

산허리 안개처럼 당신 얼굴도 흐려졌을 테지.

 

사야가 혹은 김충선, 경계인으로 살다 간 자리

어쩜 우록리(友鹿里), 사슴을 벗하는 마을이라니!

그래 혁명은, 오직 평화로 가는 길뿐이지.

 

* 김충선(1571-1642) : 임진왜란 중 일본에서 귀화하여 사성김해김씨(賜姓金海金氏)의 시조가 된 인물로 녹동서원에서 제향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