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삐딱하다는 것은

톰소여와허크 2010. 12. 4. 08:59

삐딱하다는 것은/ 이동훈

  거울 앞에 서니 며칠 미룬 면도 덕에 거뭇한 수염이 제 성깔대로 돋쳐 있다. 야한 생각을 하면 그렇다는데, 지금껏 터럭만 한 여유도 없이 무수하게 베어 온 날들을 참회하고 싶은 마음은 뭔가. 면도를 다시 미루면서 거울 속의 나는 조금 삐딱해진다.

  모자는 삐딱이 눌러 써야 폼이 난다. 삐딱한 것은 겉멋만은 아니다. 안되는 일은 안 되게 하고 될 일은 되게 한다. 삐딱해지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옆으로 돌려도 소용이 없다. 삐딱하다는 것은 묻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문을 다는 일이다. 삐딱해야 비로소 야할 자격이 있다.

  머리빗을 대든 말든 아래로 내려오는 머릿결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부터 머리빗을 버렸다. 그랬더니 야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가슴골까지 단추 하나를 더 열어 보이는 여자도 야하다고 한다. 야한 것은 감추지 않고, 꾸미지 않고, 잇속으로 어물쩍이지 않는다. 변변하지 않은 내 푼수에도 야하고 싶다.

  수염을 길러서라도 삐딱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그 수염을 틀어서라도 야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거울을 다시 돌려놓았더니, 한쪽으로 몰려서 중심이 된 바깥세상이 보인다. 그 반대편에 서서 또 다른 중심으로 살고 싶다는 삐딱한 생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야하게 머리털을 손으로 쓸면서 이 불온한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