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빙구간/ 이강하
결빙구간 / 이강하 지퍼를 열고 있었다 탈골된 발목 몹쓸 예감이 맞았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고목나무 밑 까만 음지 같은 날들
물고기야, 어디 있니? 이파리 뒤에 숨었니, 옹이 속에 숨었니 대답해주지 않으면 아무 곳에나 작살을 놓을 거야
문 닫힌 회사 앞 가족들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포스트잇처럼 떨고 눈발은 겹겹 능선 표지판에 침묵을 건네고 산과 산은 어깨를 기대고 꽁꽁 언 마음을 어디로 흘려보내는 걸까
촉감으로 뭉쳐진 음지의 끝 이전의 자궁에서 눈물 같은 시간을 만난다 따뜻한 햇살이 발목 사이로 모여든다 늑골 사이 구멍이 뚫리는 소리 얼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다 새의 울음 따라 벼랑에 서 있다 - ≪시와 세계≫ 2010 겨울호 수록 - ‘몹쓸 예감’에 시달리며 산을 오르던 화자는 발목을 크게 접질리었다. 몹쓸 예감은 ‘문 닫힌 회사 앞 가족’의 처지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매몰차게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고 화자는 한데서 찬바람을 견디면서 생계를 읍소하기도 할 이웃이 눈에 밟히기도 했을 것이다. 삽입 가요의 성격을 띠는 “물고기야, 어디 있니?/.../아무 곳에나 작살을 놓을 거야”는 고대인이 불렀던 구지가를 연상케 한다. 거북이를 위협하는 주술적인 노래인데, 이때의 위협은 소망 성취를 위한 간절한 기도와 다르지 않다는 해석을 이 시에도 적용하고 싶다. 다친 발목에 햇살이 따스하게 닿으면서 ‘꽁꽁 언 마음’이 조금씩 풀릴 기미를 보인다. 이런 기운이 이쪽(산 위)에서 저쪽(산 아래)까지 뻗치기를 화자는 바라는 것일까. 그럼에도 벼랑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는 건 아니니 세상은 여전히 결빙구간이다. 얼어붙은 세상이 온전히 녹아서 작살로 더 이상 겁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을 텐데……. 이 말도 오독의 작살일까 봐 걱정이다.(이동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