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그때 검은등뻐꾸기가/ 박남준

톰소여와허크 2011. 5. 5. 19:18

 

그때 검은등뻐꾸기가/ 박남준



쑥국을 끓여 먹던 봄날의 입맛이 푸른 날은

아주 옛날과 오래지 않은 오늘

그 중간 쑥국만 끓여 먹어 입안에서 쑥 냄새가

풀풀거리던 날이 있었다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객쩍은 호기로 산중 일기를 끄적이던 때였다

쑥을 캐던 어느 날 낯선 새소리

흐흐흐흐 흐흐흐흐

그러니까 나를 비웃는다 여겼다

손아귀의 힘이 풀리고

한 움큼 캐던 쑥이 후들거리며

땅에 떨어졌던 모양이데

거기 주저앉아 처량해졌던가 보데

누군가는 이렇게 들었다지

세상의 무거운 짐 다 벗어버리라고

홀딱 벗고 너도 벗고

홀딱 벗고 나도 벗고

한 스님께 물어보았지

빡빡 깎고 빡빡 깎고

연암이 열하를 건너며 그러했겠다

새 한 마리 우는 소리 마음에 따라 돌다니

지천명의 나이 쉰, 이네 내 귀에 어찌 들리려나

흐흐흐흐 검은등뻐꾸기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사, 2010.



 

감상-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버들치 시인은 지리산행을 택했다. 버들치란 별칭은 안도현의 시 모악산 박남준 시인네 집 앞 버들치에 대하여’(그리운 여우1997)에서 시작된 걸로 보이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2010를 통해 한 번 더 세간에 언급된다. 아무려나 버들치의 생명을 위하는 사람의 마음이 곧 시심이란 생각이 든다.

모악산 시절 이후 시인이 애써 찾은 지리산이라 해서 자본과 소비로부터 자유로울 리 없다. 끼니 해결도 만만찮다. 쑥만 캐다가 후들거리는 모습이 스스로 처량하기도 했겠다. 이런 불편함은 밥벌이를 위한 일과 이해관계, 거기서 파생되는 스트레스까지 버린 대가니 못 견딜 정도는 아닐 것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동일하지만, 어떤 이는 하나를 더 얻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하나를 더 내려놓음으로써 가벼워지기를 소망한다. 부자가 되지 못한 가난은 불행이지만 선택을 통해서 얻은 가난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인은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를 통해 자기가 가진 욕망의 껍데기를 더 벗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자본과 물질, 소유와 근심으로부터 멀리 벗어날수록 더 인간적이고 더 생태적이라는 긍정의 마음에 있기에 너도 벗고”, “나도 벗고와 같은 표현을 얻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작작 먹고”, “작작 먹고로 들었다. 적당히 먹고 나누라는 말인데, 배의 기름기가 켕긴다.

듣는 사람의 처지나 마음에 따라 뻐꾸기 소리든 강물 소리든 귀에 닿는 외부의 소리가 다르게 들릴 것이다. 마음을 바꾸면 중요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일이 정작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의심이 자꾸 생기고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들고 검은등뻐꾸기를 만나러 가자. 귀를 열면 말씀 하나 주실 것이니.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