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집으로 빌러 가다/ 심호택
뒷집으로 빌러 가다/ 심호택
우리집에 폐 끼치는 은행나무
미안해서 베겠다는 뒷집으로
나는 빌러 간다
자기네 나무 자기가 베겠다는
뒷집에 가서 내가 할 일은
미안해할 까닭 없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당신네 나무가 우리집 뒤뜰에
여름내 그늘 드리우는 것
가으내 이파리 떨구는 것
구린내 풍기며 은행열매 쏟아놓는 것
다 괜찮으니 눈곱만치도
괘념치 말라고 부탁하는 일
그리하여, 앞뒷집 사이에서
떨고 있을지 모르는 저 늙은 나무
살려주십사 사정하는 일이다
- 유고시집『원수리 시편』, 창비, 2011.
_ 감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가니 그쪽에 열린 감은 자기네 소유라며 옆집에서 우겼다는 옛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시비를 가린 끝에 뿌리와 밑동이 있는 쪽이 소유권을 인정받았지만 조그만 이익을 앞세워 이웃끼리 얼굴 붉히며 다투는 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은행나무를 죽이거나 살리려는 뒷집과 앞집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뒷집 주인은 은행나무가 앞집을 가리는 데다 구린내로 불편을 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안해서 나무를 베어야겠단다. 앞집은 전혀 미안해하지 말라며 통사정을 한다.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상황의 유머러스함과 함께 그 바탕에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자연 사이 흐르는 정을 감지할 수 있어서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떨고 있을지 모르는 저 늙은 나무”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타자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씨는 서로 다르지 않다.
크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고도 미안해하는 마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면 그리로 세를 들어 살고 싶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