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어상천 일박 魚上川 一泊/ 차영호

톰소여와허크 2011. 9. 3. 17:38

 

Richard Thorn

어상천 일박 魚上川 一泊/ 차영호

 

 

  팥배나무 속눈 보채는 저녁해가 구절양장 장재 구비를 편다 잔설殘雪 애달픈 소백小白의 목덜미를 훔쳐보며 산허리 붙잡고 납작 엎드린 토담집 서너 채 오붓이 등을 맞대고 군불을 지핀다

  ‘서르나문 해 전에 예 살았노라’는 어줍은 길손에게 선뜻 아랫목을 내준 쥔장, 머리를 긁적이며 가난살이 겹겹 쌓인 벽장을 연다 외딴 산골에서 어슬어슬 땅거미 지기 무섭게 이불을 펴는 것은 아득한 세상일랑 어서 개켜 두라는 것일까?

  별이끼 꽃다지 고들빼기 범벅된 묵정밭 구렁에서 추억처럼 밤꿩이 울고 별똥이 단숨에 하늘을 부욱 찢는다

- 『애기앉은부채』, 문학의전당, 2010.

 

 

* 인가와 사람이 없는 풍경이 절경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자취가 느껴지는 풍경이 정서적으로 편한 느낌이 있다. 물론, 사람이 풍경의 일부로 녹아 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사람이 전면으로 부각된다면 적이 불편해질 것이다. 일상을 산다는 건 이런 불편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을 떠나 산골로 일박하러 간 화자는, 저녁해 받는 산모롱이와 서너 채 집들을 절묘한 풍경화로 되살려 놓았다. 주인이 이불을 펴는 것을 두고 “아득한 세상일랑 어서 개켜 두라는” 전언으로 새기는 것도 재미난다.

일상에선 내키는 말, 내키지 않는 말 두루 섞고 살아야 하지만, 이 산골에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런데 말수가 적은 길손과 주인을 대신하여 밤꿩이, 별똥이, 풍경이 말을 건네니 일찍 자긴 글렀겠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