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베토벤 바이러스/ 이송희

톰소여와허크 2011. 12. 15. 11:47

베토벤 바이러스/ 이송희


빗길에 미끄러진 소식들만 담을 넘고

굵고 질긴 빗줄기가 야윈 목을 감는 저녁

뒤 귀를 걸어 잠근 채

등 돌리고 걷는 사람들


빗속에 귀가 잘리고

말들도 토막 나고

한숨도 울음소리도 네게로 되돌아가고

오래된 금성라디오처럼

자기 말만 틀어댄다


귀 없는 섬들이 둥둥 도시를 떠다닌다

서로의 귀를 향해 입을 여는 귀들이

한때는 귀가 있었노라고

귀걸이를 매단다

- 『아포리아 숲』, 책만드는집, 2011.


* 눈뜬장님이란 말이 있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비꼬거나 안타까워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면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황도 있을 텐데 그때 쓸 수 있는 말로 ‘베토벤 바이러스’를 후보로 올리고 싶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베토벤의 악장을 편곡한 음악이기도 하고, 같은 제목으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내용인 즉, 갈등을 극복하고 합주를 훌륭하게 이끌어낸 지휘자의 이야기라고 한다. 아마도 소통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소통을 간절히 원하며 곡을 썼듯이 시인 역시 독자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쓸 것이고, 평범한 너와 나도 소통을 원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 사이, 이웃 사이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더 나은, 더 생산적인 데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일 때도 있고, 소모적인 다툼일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남의 눈과 귀를 문제 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눈과 귀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듣는 데 인색하여 “두 귀를 걸어 잠근 채”, “자기 말만 틀어댄다”면 아름다운 하모니를 기대하기 어렵다.

  벽을 맞대고 사는 게 이웃이지만 동시에 귀를 맞대고 사는 게 이웃이기도 함을 새로 생각하면서 시를 읽다가 액세서리 같은 귀를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