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조재훈
노을/ 조재훈
엄마 죽고 백날도 안 되어
아빠 새장가 들고
아빠 죽고 예니레도 못 되어
의붓 엄마 이내 또 시집가고
집도 없어, 살붙이도 없어
지게 홀랑 벗어 던지고
깊은 산속으로 찾아 들었네.
마당 쓸기 동냥하기 나무하기 밥짓기
온갖 시중 십 년에 머리를 깎고
또 십 년
이제 물이 되었거니, 산이 되었거니
두고 온 마을을 찾기로 했네.
열흘 밤 열흘 낮
발 부르터 등성이에 이르니
늦가을 기운 햇살에
조 이삭 깊숙이 고개 숙이어
하도 고맙고 고마워 쓰다듬다가
굳은살 손바닥에 붙은 한 알의 스슥,
아무런 일 한 것 없는데
피땀 배인 씨알 공짜로 붙는 건
내 아직 닦음이 모자란 탓이라
가슴 치며 돌아온 길 되돌아갔네.
스님 빈 바랑에
아, 가득한 피묻은 노을
먼 마을에서 사춘인 듯 팔춘인 듯
잘 가라, 잘 가라
저녁연기 굴뚝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네.
- 『오두막 황제』, 푸른사상, 2010.
* 불가에서 말하는 업이 지나쳐서인지, 불가항력의 어떤 힘이 작용해서인지 아이의 삶이 쓸쓸하고 고단하다.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집도 없어, 살붙이도 없어” 절에 의탁하다가 결국 출가(出家)하는 운명이다.
아이는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공부하고 정진하여, “이제 물이 되었거니, 산이 되었거니” 스스로 짐작한다. 원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까지 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고 기꺼이 탁발에 나서다가 그만 사달이 난다. 이유는 “조 이삭” “한 알”을 공으로 챙겼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 한 것 없는데/ 피땀 배인 씨알 공짜로 붙는 건/ 내 아직 닦음이 모자란 탓이라”
마을로, 이웃으로, 공동체로 가는 길은, 자기를 고민하고 자기를 수양해서 도통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이다. 이웃의 노동을 존중하고, 한 알의 땀방울, 한 알의 결실도 함부로 하지 않고 섬기는 태도가 먼저라는 걸, 그게 절실한 이 시대의 문제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밥 짓는 사람의 마을로 가기 위해선 숟가락만 얹을 궁리에서 벗어나 밥 한 공기의 노동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떳떳하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