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보름달/ 정대호

톰소여와허크 2012. 1. 29. 22:40

보름달/ 정대호

 

 

동쪽으로 걷는데

산 위에서 환히 웃으며 솟는 얼굴

내 어린 날 벼 베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

머릿수건을 벗어 치마의 먼지를 털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환한 얼굴

온 들의 벼가 넘실대는 얼굴

한 해의 노동이 익어서 돌아오는 얼굴

 

- 『어둠의 축복』, 시와에세이, 2008.

 

 

* 일(一)은 너무 가진 게 없어 실망이고, 구십구는 하나를 못 채워서 불만이다. 백(百)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온전히 좋다. 보름달은 숫자로 치면 백이 될 것이다. 아직 얻지 못한 자에겐 꿈꾸는 지향점이 될, 그 자체로 이상적이고 완벽한 세계다.

  시인은 옛적의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런 영감을 받는다. 어머니는 “벼 베고”, “골목으로 들어서는” 평범한 시골 아낙이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자식의 초롱한 눈망울을 마주치고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이보다 좋은 순간이 있을까. 보름달은 어머니가 보는 자식의 얼굴이고, 자식이 보는 “어머니의 얼굴”이며 그 기쁨은 “온 들의 벼가 넘실대는 얼굴”과 같겠다.

  이런 지극히 아름다운 체험이나 인식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야금야금 줄어드는 달처럼 더 많은 시간을 관계의 단절과 부재 속에 고통 받으며 야위어 가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핍감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一)은 앞으로 채울 일만 있어 좋고, 구십구는 아직 채울 일이 있어 좋은 것이니까.

  보름달을 기다려 볼거나. 정직한 노동, 정직한 얼굴, 정직한 감정이 마주하는 그런 환한 세상을.(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