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신록 新綠/ 차영호
톰소여와허크
2012. 2. 19. 21:53
노박덩굴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parkcheon2/7600073 야생화친구님
신록 新綠/ 차영호
칡넝쿨 노박덩굴 얽히고설킨 바위너덜
가파른 산날망에 뾰루지처럼 새로 돋은 봉분이 있어
너른 세상 허우적거릴 때 쓰던 낯짝 벗어놓고 너부죽
절을 한다
흙내 싸한 코끝에 노랑연두
누가 물어다 숨겨놓은 것일까
도토리 한 알
빼죽이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그대로 봉분 깊숙이 뿌리 내리면
세상 먼지 다시 풀썩일라
살그머니 주워들고 내려오는데
어치 한 마리, 내 뒤를 쫓으며 호들갑을 떤다
니 놈이 임자였구나
묏등 너머로 장물을 던지니
천지사방에 연두 물감이
확!
- 『바람과 똥』, 아르코, 2012
* 연고가 있어서 찾아온 무덤이든, 산행하다가 잠시 쉬어간 무덤이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은 세상 일 멀리 떠나 참 조용하겠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 굳어 있었을 얼굴이 펴지는 시간이다.
게다가 푸른빛이 새로 도는 신록이지 않은가. 발아래 세상에서 느끼지 못했을 신록은 자연색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흔한 만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다부지고 열렬한 청록보다는 야리고 순한 연록(연두 내지 노랑연두)에 시인은 “확!” 이끌렸나 보다.
고인을 생각해 주워들은 도토리를, 어치를 위해 다시 내주는 마음결도 바로 연둣빛이다. 아직 멀리 있는 봄, 빚내듯 미리 당겨서라도 저 “연두 물감”을 뒤집어쓰고 싶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