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푸른 자전거/ 이윤학

톰소여와허크 2012. 4. 8. 23:13

푸른 자전거/ 이윤학

 

어둠이 내릴 때 나는

저 커브 길을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있었지

저 커브 길 끝에

당신을 담을 수도 있었지

커브 길을 들어 올릴 수도

낭떠러지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

당신이 내게 오는 길이

저 커브 길밖에 없었을 때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지

커브 길 밖에서는 언제나

푸른 자전거 벨이 울렸지

 

- 『나를 울렸다』, (주)문학과지성사, 2011.

 

* 어둠은 길의 경계와 윤곽을 모호하게 만든다. 또한 어둠은 흐려지는 시계(視界)로 말미암아 실재하는 길에 갇히지 않고 상상의 길을 펼쳐보이게 한다.

  길은 끝이 보이거나, 거리가 감지되는 직선이 아니라 마음의 기울기에 따라 꺾인 곡선이다. 그 길에 “당신”을 두고 맘대로 “들어 올릴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데서 “나”의 의지와 주관이 작용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길 저쪽에 있음으로 해서 “나”는 길을 디자인한 주동자로서의 역할을 잃고 “어디로도 가지 못”하며 당신에게, 혹은 당신이 오는 길에 포박된 자아상을 보여준다. 어쩌면 “나”에게는 “당신”이라는 그리움의 징표가 곧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상상으로 듣는 푸른 자전거 소리가 맑다. 길 안팎의 고단함을 씻고 가듯이.(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