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수국 나무 / 김은령
목수국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kyung345/9 김경효님
나의 목수국 나무* / 김은령
목수국 나무 아래 죽은 참새를 묻는다
목수국의 휘어진 가지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생
호미로 구덩이를 파서 묻어 주며
결코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움켜쥔 참새의 가느린 발가락과
목수국 가지와의 거리를
단호하게 끊어주었다
연보라빛 꽃잎 몇 장으로도
가볍게 받아 안을 수 있는 주검에
토닥, 토닥 흙을 다지며
내 생 또한 언젠가는 떨어져야 할 터
그 나뭇가지를 찾다가
이미 오래전에 지나쳐 왔음을 안다
지나쳐 온 곳을 모르는 척 되돌아가기란
얼마나 낯 뜨겁고 치사한 일이냐
어쩌다 죽음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목수국 나무
*목수국 나무: 한 가지에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을 뒤섞여 피우는 나무
- 『차경 借憬』, 황금알, 2012.
* 이승의 생이 끝나는 순간을 ‘돌아가시다’라고 처음 표현한 사람은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다. 원래 왔던 자리로, 육신과 영혼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사자(死者)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큰 위로가 되는 말이다.
그런데 ‘죽기 좋은 자리’도 따로 있는 걸까. 만약 있다면 희로애락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 있어 마음이 평화로운 곳이지 않을까. 이런 곳을 이미 지나쳐 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눈에 보이는 더 나은 자리를 내다보다가 정작 살피고 보듬어야 할 자리를 놓쳤다는 의미로 읽고 싶다.
‘죽기 좋은 자리’는 ‘살기 좋은 자리’의 역설이기도 할 것이며, 이런 자리는 꼭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수행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바깥으로 나돌던 방랑의 시절을 끝내고 고단하고 쓸쓸한 생의 나뭇가지에 날개를 접을 때가 온다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때가 온다면, 목수국 나무의 배웅을 바라는 호사 정도는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