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발 / 김신용
그 두 발 / 김신용
두만강의 강둑에 여자의 시신 하나가 풀더미에 덮여 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새벽의 강을 건너다 익사한 것일까?
시신은 그렇게 익사체로 누웠어도, 풀더미 바깥으로
두 발을 내밀고 있다 죽어서도 허공을 걷고 있는 것처럼
죽어서도 물구나무서서 걷고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사체에 햇볕 한 점 내리게 하지 말라는 듯이
자신의 주검에 동전 한 닢 던지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혀는 돌처럼 딱딱히 굳어버렸으면서도
자신에게 남은 쓸쓸함, 그 절망을 견뎌내지 못하고
끊어야지 하면서도 끝내 끊지 못한 삶의 끈을 다시 붙잡기 위해
풀더미 바깥으로 악착같이 내밀고 있는 것 같은 두 발
청계천 고가도로 밑, 쓰레기 하치장에서 죽어
가마니를 수의처럼 덮고 있던 두 발과 너무도 닮은
그 쓰레기 하치장에 고인 어둠처럼, 알콜올 중독의 간경화로 퉁퉁 부어오른
그 지게꾼의 두 발과 너무도 닮은, 풀더미에 덮인 그 두 발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병원을 찾아가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병원에는 가기 싫다고-비록 이 쓰레기 하치장 한구석에 개처럼 죽어도
시체 해부대에는 팔려가기 싫다고-우유 한 병만 구해 달라고-
술 끊고 우유를 먹으면 살 수 있다고- 오랜 行旅가 가져다준 공황의식처럼
가마니 바깥으로 완강히 내밀고 있던, 그 두 발과 너무도 닮은
두만강 강둑의 풀더미에 덮여 있는 두 발
지난날의 고여 있는 시간, 쓰레기통에 썩고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가
더 깊이 부패해가는 시간처럼, 살았을 때는 직립의 그림자 한 번 던지지 못한
두 발, 케케묵은 이발소 그림처럼 변하지도 않는
밤하늘의 별자리, 그 천체불멸설만큼이나 오래된 그 두 발
- 시선집『부빈다는 것』, (주)천년의시작, 2009.
* 풀더미 바깥으로 나온 두 발과 가마니 바깥으로 나온 두 발이 계속 오버랩된다. 두 발의 주인은 북남에서 생존을 위협 받는 소외계층을 극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한 공기의 밥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탈북자나, 자신을 돌볼 의지도 능력도 상실한 지게꾼이나 그 두 발은 “악착같이”, “완강히” 바깥으로 내밀고 있다. 죽어서라도 좀 편하면 안 되는 걸까. 시인이 받아들이기엔, 그 두 발은 “직립의 그림자 한 번 던지지 못한” 삶, 사뭇 힘들고 고단했을 삶을 원망과 분한 마음을 섞어 세상으로 내지르고 싶은 상징이었을 게다.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시체 해부대로 옮겨가기 십상인 삶, “술 끊고 우유를 먹으면 살 수 있다”는 독백이 맹랑하고 쓸쓸하고 처연하다.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그 바닥의 실제와 정서를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뭉클한 느낌마저 든다.
소외된 두 발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또 지속될 것임을 “천체불멸설”이라는 다소 생경한 비유로 마무리 짓는 것은, 현실의 어두운 그늘을 환기시키고 애써 이를 외면하려는 시선에 대한 시인의 야유이자 비판일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