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사 터 / 이종암
사천왕사 터 /이종암
동생, 너 죽어 석삼 년 나는 폐허다
남산과 낭산 사이 길 한쪽
널브러져 흔적으로만 남은 폐사지
사천왕사 터, 목 잘린 귀부를 매만진다
죽은 누이에게 제祭 올리며 월명사
부르던 그 노래 따라 부른다
죽음으로 생生은 완성되는 것인가
폐사지, 저 절대의 침묵이
절터를 두 동강 끊어놓은 철길의 쇳소리
다 잠재우고 있다
월명의 슬픈 노랫가락 물살져 오는
팥죽빛 서녘 하늘로 새 한 마리
날아가는 걸 봤다 가릉가릉 그 소리
아직 몸에 남아 있어 나는 아프다
- 『몸꽃』, 애지, 2010.
* 사천왕사는 월명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월명사는 이곳에서 곧잘 피리를 불었으며,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며 “슬픈 노랫가락”(祭亡妹歌)을 남기기도 했다. 출가의 몸이지만 일찍 죽은 혈육에 대한 정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천 년 세월을 훌쩍 넘어 시인이 폐사지인 사천왕사 터를 찾는다. 그 옛날 월명사처럼 시인은 아우를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석삼 년”을 “폐허”로 지내왔다고 할 만큼 상처가 깊다.
월명사가 제사를 마치자 지전이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하더니, 시인은 “팥죽빛 서녘 하늘로 새 한 마리/ 날아가는 걸” 본다. 아우의 분신일 게다. “가릉가릉”은 설산과 극락을 오가는 전설의 새인 ‘가릉빈가’를 연상케 한다. 또, “가릉가릉”은 이승을 뜨는 아우의 마지막 소리일 수도 있고, 그 소리가 시인의 가슴에 둥지를 틀어 때때로 울려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픔은 어쩔 수 없는 유산이지만 이런 노래를 통해 아픔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조금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