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등等 / 장이엽

톰소여와허크 2013. 5. 24. 22:20

등等 / 장이엽

 

비주류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이름이다

 

열거된 각각의 명사 뒤에서 때로는 ‘들’로

때로는 ‘따위’로 바뀌어 불리기도 하는

확인할 필요가 없는 초대 손님

 

솜털로 채워진 낙타의 귓속에 관심이 있는 당신이라면

‘등’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바위 그늘에 주저앉아 종일토록

바람을 기다리는 노루귀가 되어 본 당신이라면

‘등’의 구별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여!

행여나 부피를 재려고 실린더 눈금을 읽게 될 때는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말고

밑에서 올려다보지도 말고

눈높이를 액체 표면과 수평이 되도록 맞추어야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당신 옆에서 간간이 물잔 비우는 나 등을 만나거든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시는 나 등을 만나거든

 

당신의 이름을 받쳐주는 기타 등등을 만났다고 기뻐해 주시라

당신의 얼굴을 밝혀주는 기타 등등을 만났다고 반가워해 주시라

- 『삐뚤어질 테다』, 도서출판 지혜, 2013.

 

* 등, 등등, 기타 등등은 그 밖의 나머지 것의 이름이다. 중심이 아닌 주변이나 변방에 어울리는 그 자리에 시인은 “비주류”라는 이름을 주었다. 등等에 주목하고 비주류와 연결한 것은 아마도 시인 자신이 비주류로 살고 비주류로 생각하며 자기 정체성을 비주류에서 찾고자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주류를 꿈꾸거나 비주류를 극복 대상으로 삼는 그런 비주류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참된 비주류는 위아래의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가치를 우선함을 시의 행간에서 확인하는 즐거움이 크다.

   나는 소망한다. 주(酒)류인 당신과 안주류인 내가 비주류와 한통속이 되어 같은 높이로 한 잔 하게 되기를.(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