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어먹다 / 김경선
붙어먹다 / 김경선
파도는 갯바위와 철썩철썩 붙어먹고
소라게는 빈 고동에 붙어먹고
따개비는 갯바위 사타구니와 붙어먹고
개는 엉덩이끼리 찰싹 붙어먹고
악어새는 악어이빨에 붙어먹고
걸레는 방바닥과 붙어먹고
엉덩이는 변기와 붙어먹고
전화 한 통화로
너에게 흘러가 들러붙고 싶은 나는
꽂지 못한 플러그처럼 파팟! 전기 한 번 통하지 못해
발가락 더듬더듬 붙어먹자 꼬여도
다가서면 움찔 비켜서는 소심한 남자
나를 빠져나간 머리카락은 먼지와 붙어먹고
벽과 붙어먹은 못은 휘도록 살건만
상처와 붙어먹은 난 지금껏
부모님께 빈대처럼 잘도 붙어먹고 산다
하숫물 꺼억 트림하는 싱크대 앞에서
제대로 붙어먹지 못한 오늘이 흘러가고
잘 붙어먹고 사는 족속들이 그립다
- 『미스 물고기』, 북인, 2012.
* ‘먹다’라는 말을 본동사 뒤에 자주 붙여 쓰는 게 언중의 습관이다 보니, 아예 ‘붙어먹다’라는 말처럼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게 다수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붙어먹다’는 남에게 의지하여 도움을 얻을 때 쓰는 말이다. 상대를 해코지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떼어먹거나 뜯어먹는 것과는 아주 다르고, 거저먹거나 빌어먹는 것에 비해서는 덜 구차한 느낌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의지에 따라 붙어먹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이해 내지 묵인을 전제로 붙어먹는 게 가능해 보인다.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법이다. 붙어먹든 받아먹든 허물이 되지 않는 사이란 얼마나 가깝고 정다운가. 그런데 현실은 가깝다고 여기는 상대에게조차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하필이면 상처와 붙어먹다니! 시인의 자조적인 고백은 독자에게 오히려 위로가 될지 모른다. 털어먹지도 말아먹지도 못할 상처, 누구든 품고 사는 줄 헤아리는 까닭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