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혹시, 뭉크
톰소여와허크
2013. 8. 7. 06:54
혹시, 뭉크 / 이동훈
젊은 뭉크가 담배를 든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담배를 가슴께 두고
빨지 않은, 빨 생각이 없는 생연기만
절벽 아래로 투신하려는 유혹처럼
나그네쥐 꼴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머니와 누이를 차례로 빼앗아 간 운명과
그로 인해 사나워진 아버지를 지나오며
불안 불안하고 뭉글 뭉글한 슬픔을 태우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다.
어려서 놓아버린 게 많은 손이기에
뒤늦게 잡힌 것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일까.
고갱이 떠난 뒤
귀를 자르고도 붓을 잡았던 고흐나
생인손 같은 여자와 가운뎃손가락을 함께 날려 버린 뒤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뭉크나
붓을 들지 않으면 술잔을
술잔이 비면 담배를 들었을 것이다.
시릿 시릿하고 뭉글 뭉글한 슬픔을
오래 만지작거렸을 테다.
쓰지도 않는 볼펜을
쥐고 있어야 편한 그대도 혹시, 뭉크.
* 뭉크,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자화상>(18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