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나는 사과를 쪼개서 먹지 못한다 / 원무현

톰소여와허크 2013. 10. 30. 16:41

나는 사과를 쪼개서 먹지 못한다 / 원무현

 

나는 사과를 쪼개서 먹지 못한다

어릴 때처럼 살만 베먹고

뼈는 그냥 남겨둔다

 

그 뼈의 집에는

나무를 꿈꾸며 시간을 항해하는

씨앗 두 개가 나란히 누워있다

 

세상은 언제나 쪼개지고 나눠지면서 힘을 길러왔다

좌/우, 상/하, 흑/백……

그래도 나는 사과를 그렇게 해서 먹지 않으련다

내 안에 칼 깊숙이 지나가

몸이 두 동강 난 아픔을 울어야 했던 것은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할 때였다

 

나는 사과를 쪼개서 먹을 수 없다

저만치서 사과나무가 또 꽃을 피우고 있다

- 『사소한, 아주 사소한』, 지혜, 2012.

 

*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중) 에 나오는 마음 약한 친구와 같은 과(科)의 동지(同志)를 만났다. 사과를 쪼개서 먹지 못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직 밖으로 나설 준비가 안 된 채 무방비로 노출될 씨앗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 그 씨앗이 생이별로 둘로 나뉘게 되는 상황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시인은 후자 쪽에 무게를 더 실어주지만 생명이나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이쪽저쪽을 자꾸 나누고, 이쪽에 몸담거나 관계되어 있다는 이유로 저쪽을 미워하고 꺼림칙해 하는 세상이라면 자신은 섞이고 싶지 않다는 사람, “몸이 두 동강 난” 이별의 아픔을 지나왔기에 남의 아픔에 무심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꽃을 피워낸 사과나무에 눈부셔 할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