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쑥부쟁이 꽃 / 이대의

톰소여와허크 2014. 1. 8. 17:13

 

쑥부쟁이 꽃 / 이대의

 

내 청춘을 사로잡았던 꽃

 

젊은 날, 산골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 나누다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섰지

 

내 사는 꼴이 보잘것없어

그냥저냥 지내다가도

찬바람 불면 생각났던 꽃

석삼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아 다시 찾은 산골

거기에 여전히 그 꽃이 있었지

아직까지도 모습 변치 않고

중년이 되어버린 꽃

 

한때 사랑을 나누던 꽃들 다 떠나갔어도

이제껏 나만 생각하며 기다렸던 꽃

그때의 약속이 산보다 더 큰 것일 줄은

아무 말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혼자 울었지

 

- 『서울엔 별이 땅에서 뜬다』, 서정시학, 2013.

 

* 쑥부쟁이는 가을이면 들이나 야산에 흔하게 자라나는 풀이다. 좀 더 일찍 피는 벌개미취나 잎이 쑥을 닮은 구절초와 구별이 쉽지 않다. 어떤 시인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할 지경이면 절교까지 생각하겠다니 공부를 좀 해두어야겠다.
  이야기가 시의 모티브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위 시도 쑥부쟁이 처녀(쑥 캐는 대장장이 딸)의 전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당사자인 처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녀가 기다리던 남성의 시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또는 사랑을 결실하지 못한 그 남성에게 시인의 모습이 일부 투영되어 있기도 할 것이다.
  이쪽에서는 “내 사는 꼴이 보잘것없어”선뜻 다가서지 못했지만, 저쪽에서는 “이제껏 나만 생각하며 기다렸”으니 시쳇말로 이렇게 핀트가 안 맞는 게 삶이란 말인가. 자기생활에 열심이거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게 문제될 일은 없겠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잊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시인에게 지난 시절이 회한으로 다가올 수 있어도 쑥부쟁이 환한 얼굴에서 그늘을 읽고 울 수 있는 마음결이 있어 인생은 건조해지지 않고 적당한 습기를 주는 것일 테다. (이동훈)

 

  사진 출처: http://danbee928.blog.me/140197707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