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 허만하

톰소여와허크 2014. 2. 21. 20:59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 허만하

 

 

길이 끝나는 데서

산이 시작된다고 그 등산가는 말했다

길이 끝나는 데서

사막이 시작한다고 랭보는 말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겨진 지도처럼

로슈 지방의 푸른 언덕에 대한

향수를 주머니에 꽂은 채

목발을 짚고 하라르의 모래바다 위를

걷다가, 걷다가 쓰러지는 시인

모래는 상처처럼 쓰리다

시인은 걷기 위하여 걷는다

낙타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마르세이유의 바다는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따라온다

눈부신 사구. 목마름, 목마름

영혼도 건조하다

원주민은 쓰레기처럼 상아를 버린다

상아가 되어서라도 살고 싶다

바람은

미래 쪽에서 불어온다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물냄새를 맡는다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 길 끝에서

다시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지도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다

 

-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출판사.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러진 바로 그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랭보의 편지에서)

  랭보는 그의 편지에서 예술가는 견자(見者, voyan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랭보에 영향 받은 후대인에 의해서, 영혼을 단련하는 견자로 랭보 자신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폴 베를렌과의 결별 직후 스무 살에 완성한 시집, 그것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은 끝이 났지만, 견자로서의 그의 의식과 방랑과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폴 베를렌이 붙여준 별명)가 되어 아프리카와 유럽을 헤매다가, 다리 하나를 잃고 심장이 식을 때까지 자신을 끝 간 데까지 밀어붙였던 것이다.

  랭보를 소개하는 시인은 요절한 천재로부터 시를 지향하는 마음을 읽었나 보다. 낙타가 맡는 “물냄새”는, 시인이 꿈꾸는‘영혼을 적시는 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주어지지 않은 물, 사막 저 건너편에 있을 물, 가 닿으면 더 멀리서 냄새를 풍겨오는 물, 확실치 않은 그 물의 흔적을 찾아 낙타는 사막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길 끝”에 와도 또 “길”로 나서야 하는 게 견자의 운명이다.

   다만, 미래를 당겨쓴 그의 족적이 지도로 남아 후대에 한 번씩 펴보게 되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