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어머니의 저항(Ω) / 하린

톰소여와허크 2014. 3. 27. 17:18

어머니의 저항(Ω) / 하린

 

 

건전지 갈아 끼우듯 여자를 바꾸던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서면 스파크가 튀는 밤이다

두꺼비집에 두꺼비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저항 한 개를 추가하며

꼬마전구처럼 소심하게 깜빡거리고만 있다

아버진 뒤늦게 어머니와 접속을 시도하지만

어머닌 차단기 내린 지 오래

전압이 센 할아버질 수발한 이력을 어머니가 토해낼 때마다

양과 음이 쪽쪽 빨아대는 전류의 본능만 탓하는 아버지

어머닌 한이 충전된 배터리를 꺼내

아버지 몸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여자들을 지져댄다

눈이 뒤집힌 여자들이 하나둘 꽁무니를 뺄 때

아버진 수명 다한 필라멘트처럼 퍽 맥이 풀린다

과부하가 걸리는지

면상에 손가락까지 찔러대는 어머니

오긴 왜 와? 여기가 어디라고!

급기야 하늘과 지상 사이에 퓨즈가 나가는 소리

이승과 접속이 끊기는 소리 살벌하게도 튄다

어휴, 난 어머니가 차려준 전기만 먹고 살아야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희한한 발전기를 몸 안에 단 어머니

다 타버린 향불 앞에 독주 한잔 따라 올리며

40년이 넘은 울음센서 스위치를 누른다

누전(漏電)인지 누전(淚田)인지……

 

제삿밥도 못 먹은 방전된 아버지, 내년에도 또 오실라요?

 

-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문학세계사, 2010.

 

* 위 시에서 화자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전기와 저항으로 의미화한 것은 어긋나는 부부 관계를 적실하게 그리려는 의도였겠지만, 대상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 객관적 위치를 갖고자 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전기는 그 자체의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전류로 흐르고자 하는 성질이 있는 줄 아는데, 문제는 같은 종류의 전기를 밀어내듯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정을 내지 못했고, 그런 아버지에 대해서 어머니가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류가 딴 데로 새는 것에 대한 저항은 부분적으로 땜질의 효과는 있었을 테지만, 그 사이 아버지의 전류량은 줄어들다가 결국 방전되고 만다.

 서로 통하지 않는, 오고 가지 않거나 가고 오지 않는 그런 사이, 누전 되어서 눈물 흔적만 남은 관계에 대해 쓰고 읽으면서 시인도 독자도 기분 좋게 찌릿하게 통하는 전류를 꿈꾸게 되지 않을까.(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