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회화나무 아래서

톰소여와허크 2014. 4. 24. 09:16

 

 

2012년 대구 달성공원, 회화나무 아래서

 

회화나무 아래서 /이동훈

 

大邱는 공자 이름 丘를 피해 邱가 되었다.

그 구릉 중심에 수백 수령의 공자수* 있다.

코끼리, 호랑이, 곰이

철장 속에서 하품하는 오후

까치발 들던 아이마저 칭얼대다 떠나면

진즉부터 공자수 그늘로 점점이 물러앉은 노인들

앙다문 입매로 좀쳇일엔 꿈쩍도 않는다.

부모 찾는 아이의 생울음에 잠깐 술렁일 뿐

생의 가장자리로 들고 나는 길은

온종일 바삭하기만 하다.

나무꼭대기 위로 한 떼의 비둘기 선회할 때면

울안의 네발짐승은 하나같이

내리 꺾인 가장자리 길로만 오간다.

닿을 수 없는 저쪽 너머로 몸의 중심을 옮기는 대신

푹 꺼진 바닥만큼이나 아슬한

미끄러지거나 헛디디고 싶은 유혹으로

혓바닥을 연하여 날름대는 것이다.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는 해질녘

약술 받은 것처럼 빨그레 물든 세상

노인을 편안하게 하는 게 꿈이라는 공자 말씀을

잠시 내려놓으려는지 공자수는

펴 놓은 그늘을 한 자락씩 거두어들인다.

불그죽죽한 등을 보이며 일어서는 노인들

경계 저편 어둠으로 유령처럼 하나 둘 사라지는

大邱는 조용하다

공자 이름은 섬겨도 공자 포부는 아득한지

젊은이는 서울로 빠져나가고

몸 댈 구릉 없는 大邱는 점점,

노인들의 구렁이다.

 

*공자수: 회화나무의 별칭, 대구 달성공원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