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소여와허크 2014. 5. 9. 10:55

 

전선택, <여인>

 

 

그리운 소월 / 이동훈

 

 

먼 친척 누나가

발톱에 매니큐어 바르며 밀쳐버린

야릇한 향 풍기는 손바닥만 한 시집을

김소월 지나 칼 부세까지 킁킁대며 읽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식으로

지금의 통점만 후벼 파는 소월은

저 산 너머 좀 더 멀리 행복이 있다는

부세를 읽지 못했나 보다.

그리워하다가 아파하다가

요절해버린 시는 골수 깊이 박혀

집 나간 어머니의 흔적처럼

어둠 속을 오래 떠다녔으니

만약 그때 소월을 건너뛰어

부세만 읽었다면 생이 가벼워졌을까.

행복은 이다음에 있는 거라고

편하게 주워섬겨 삶이 달라질까마는

얼음장 지치다 돌아온 날

시집 한쪽에 그리운 건

뽀송한 양말일 뿐이라고 적었듯이

산다는 건 그리운 것의 목록을 쌓아가며

이전의 그리운 것을 잊는 것일까.

으스름한 꿈길로 오던

희미한 사랑마저 희미해질 때

먼 친척 누나가

집을 나갔다는 소문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