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 그 사람 / 이생진
만재도 그 사람 / 이생진
만재도 윤민순 씨는
서울에 천만 명이 살아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생진 하나
그러니 서울에 이생진이 없으면 서울은 없는 것이라고
웃어가며 말하던 그 농담이 진담이다
그렇게 윤민순 씨에게 이생진은 희귀종
그건 이생진도 마찬가지
만재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윤민순 씨 하나
그러니 만재도에 가면
섬마을에 윤민순 뿐이었는데
그런 윤민순 씨가 갔다
그가 가고 나니
배에서 내려 그의 집 앞을 지나가기도 싫고
정자에 앉아 있기도 싫다
그는 겨울밤이 길면 전화를 걸어 언제 오느냐 했다
그는 홍어잡이 배에서 팔을 잃은 외팔이 어부
손 하나로 잡은 우럭을 끓여놓고 인생을 이야기하던
나의 깊은 철인哲人
내 시집을 머리맡에 놓고 잤는데
만재도에 그가 없으니
그가 없으니…
- 『어머니의 숨비소리』, 우리글, 2014.
* 만재도를 검색하니, 뭍으로부터 꽤나 멀다. 지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만재도를 가깝게 느끼고 있을 터인데 시인과 시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인 윤민순 씨가 그 섬에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단 한 명의 독자만 있어도 실패로부터 건져지는 것 아닌가.
인사동에 있는 시인이 멀리 만재도 윤민순 씨를 생각하고 또 윤민순 씨가 시인의 안부를 물어오는 ‘우정’(『인사동』2006)수록) 이란 시를 기억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윤민순 씨의 부재가 시인에게 주는 쓸쓸함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시인은 단순한 독자 한 명을 잃은 게 아니라 서로 정을 내던 지기를 잃은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어쩔 도리 없는 것을 어쩔 것인가. 세상 인연도 그리움도 말줄임표로 둘 수밖에.(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