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타면 / 신현림
샤갈, <도시 위에서>
침대를 타면 / 신현림
침대를 타고 나는 달렸어 밤 도시를 돌고 돌았지
팽이가 돌듯 머리 돌 일로 꽉 찬
슬픈 인생을 돌았어
내가 태어나서 사랑하고 죽어 갈 이 침대
다 잃고 다 떠나도
단 하나 내 것처럼 남을 침대
결국 관짝이 될 침대
몸의 일부인 침대를 타고 달리면
물고기와 흰나비 떼들이 날고
슬픔까지 눈보라같이 날아
내일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세상 끝까지 갈 힘을 얻지
몸은 꽃잎으로 가득한 유리병같이
투명하게 맑아져 다시 태어나는 나를 봐
- 『침대를 타고 달렸어』, (주)민음사, 2009.
* 시인이 시집 자서(自序)에서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상상력과 판타지는 삶의 절망, 소외감, 혼란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다”라고 밝혔듯이 침대를 타고 나는 꿈은 슬픔이 그득한 삶을 그나마 견디게 하는 힘이다. 그렇다면 슬픈 일보다 더 슬프고 비극적인 일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꿈이 없는 시대, 판타지가 없는 현실일 수도 있겠다.
“다 읽고 다 떠나”는 아픔 속에서도 내 편인, 내 것인 침대를 타고 이곳을 훌쩍 뜰 수 있다면, “슬픔까지 눈보라같이 날아”에서 보듯이 그때 마주치는 슬픔은 한결 가벼워지고 조금은 낭만적이기까지 해서,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고 “세상 끝가지 갈 힘을 얻”게끔 한다.
침대를 먼 우주로 띄울 상상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새로운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숨구멍 하나를 갖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침대를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방구들과 함께 떠야 할 텐데, 방이 커서는 곤란할 것 같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