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소여와허크 2014. 9. 10. 08:39

풍사실 탁본(제주 추사관에서)

 

풍사실(豐士室) / 이동훈

 

울타리 위로 웃자란 가시 분지르고

반가운 기별이 있을까.

모슬포 항으로 목을 빼고 다시 한나절

산방산 쪽으로 돌아설 때면

속울음도 노을처럼 붉지 않았겠냐.

그 적거지에 오니 풍사실(豐士室)*이 이채롭다.

士는 안 그래도 날것을 빼닮았는데

추사의 士는 영락없이 제주 까마귀이다.

一을 듣고 十을 아는 선비(士)라 하여도

갇혀 사는 신세엔 십자가 다는 일일 뿐

맘이 몸을 해치지 않도록

너그럽게 자신을 다스려야 했을 터

스스로 날개를 주니

士는 새가 되어 산방산 위로 솟구쳐

한달음에 바다를 건널 기세다.

 

풍사실을 책상에 붙이니

선비도 못되면서 어깻죽지만 가렵다.

 

* 풍사실 : 김정희 글씨, 제주 추사관 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