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소여와허크 2014. 10. 12. 21:18

 

전준엽, 빛의 정원에서, 2010

파란 꽃 / 이동훈

 

 

버럭 성을 내지 않았을 뿐

좁은 이마에 그려지는 얕은 소가지를 속일 순 없다.

저만치 놀던 아이가 서랍장 손잡이까지 뗄 건 뭐람.

신경은 나무껍질 일어나듯 하고

얼굴은 더욱 구겨졌겠다.

 

아이는 쥐걸음으로 물러나고

에멜무지로 조인 나사못은 헐겁기만 하다.

좀처럼 붙지 않는 틈 사이

절걱이는 마음이 꿈자리까지 따라온다.

 

절개지(切開地)에 핀 파란 꽃.

가까이 가면 꽃은 온데간데없고 줄기만 덩그렁 남아

꽃을 쉬이 얻지 못하고 골목에 바장일 때

난데없이 사냥파개가 덮치는 악몽이라니.

 

식물도감에 없는, 꿈에서 보았던 파란 꽃.

서랍장을 보고야 알았다.

파란 꽃이 떨어진 손잡이 문양이란 걸,

파랗게 질린 아이 얼굴이란 걸,

헛도는 파란 꽃이 가시못 되어

몸 어딘가에 제대로 박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