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본색 / 김왕노
갈대본색 / 김왕노
2014년 2월 초입 살얼음 낀 임진강변에
아직도 바람을 업고서 강 건너편을 향해
허리를 반쯤 찬물에 담그고 선 갈대는
우리가 달래서 집으로 데려오지 못한 실향민
그 강물 얼마나 깊고 세찬지
아직도 배 띄워 그가 건넌 적 없다
- 『그리운 파란만장』, 천년의시작, 2014.
* 이 시는 김종삼 시인의 <민간인>(현대시학,1971) 그 이후를 작정하고 쓴 게 아닌가 싶다. <민간인>은 1947년 남북 경계선을 몰래 넘다가 “울음을 터뜨린 영아”의 입을 막으려다가 아이를 질식사시켰을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사건 후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며 에둘러 비극을 환기했던 작품이다. 그로부터 또 다시 반세기 가까이 흘러가고 있다.
패망국의 뒤처리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임시로 갈라놓은 선은 강대국의 포즈와 상관없이 요지부동으로 더 견고해져 있다. 삼팔선 이편과 저편으로 나뉜 민간인들(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벗과 애인)의 상당수가 서로의 안부도 묻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운이 좋은 일부는 삼사십 년 만에 한 번 만나고 다시 헤어져 남처럼 살다 갔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민통선 인근에는 실향민과 그 2세들이 많이 산다. 물론 고향 가까이 살 뿐 고향에 가지 못했고 지금으로서는 그럴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북전단을 날리려는 탈북자와 부딪치는 일도 있는데 생계나 안전 문제를 위협 받는 주민들의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이념 대결과 분단으로 인한 갈등이 현재형으로 지속되는 모습이 여간 쓸쓸한 게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민족은 1947년 봄에서 2014년 2월까지 분단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고향을 잃고 가족과 헤어져 사는 실향민에게 분단은 더 가혹하게 느껴졌을 텐데 시인은“허리를 반쯤 찬물에 담그고 선 갈대”의 모습으로 이를 표현한다. 딱 막힌 정국에 자꾸 두드려야 문이 열리듯이 뭐든지 넘어가야 넘어오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갈대본색? 갈댓잎 하나라도 부지런히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