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산을 닮은 아이들 / 손성태

톰소여와허크 2014. 12. 7. 01:01

산을 닮은 아이들 / 손성태

 

 

“니, 와 그리 빤히 보노,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쌤이 좋아서요.”

햇덩이 같은 말에 서로 데였다

먼저 난 내가 꽃으로 치자면

향기도 시든 꽃인데

말만 되풀이할 뿐인데

꽃밭에 앉아 있는 나보다

꽃들이 취했다

꽃들이 달덩이 같은 말을 낳고

말들이 은물결로 일렁이면

되돌아오는 메아리

마당에 토종닭처럼 크거래이

공부해서 남 주거래이

부자 되는 길은 오직 근(勤)과 검(儉)* 뿐이데이

크고 작은 꽃봉오리 아래

시들어가는 꽃 하나, 데인 듯 부르르 꽃잎을 뿌린다

 

*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남겨준 유산

 

- 『물의 연가』, 북랜드, 2014.

 

 

  * 다산 정약용의 두 아들(정학연, 정학유 형제)은 귀양 간 아버지로 인해 출사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학문을 버리지 않고 나름의 명망을 얻었는데 이 역시 아버지로 말미암은 바 크다. 아버지가 근과 검을 강조했던 것이 주효한 건가? 그게 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 스스로 근과 검을 실천했으며, 수시로 부치는 편지로 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정성으로 당부하는 말이었기에 그 진정이 아들에게 닿았을 걸로 짐작한다. 그 생각과 정성이 제자 황상에게 미쳐 사제지간의 깊은 인연을 남기게 된 것도 알려진 이야기다.

  위 시의 시인 선생이 제자에게 당부하는 말도 퍽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우리에 사육되는 닭이 아니라 “마당에 토종닭”이 되라는 것, 공부해서 저만 위하지 말고 남 좋은 일도 하라는 것, 다산의 근과 검을 한번 더 강조한 것은 평소 선생의 철학이 배인 말씀으로 들린다. 이 말에 울림이 있는 것은 말 자체가 근사해서라기보다는 학생의 말을 “햇덩이”로 “달덩이”로 모시는 마음이 있어서다.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현장을 즐겁게 바라보면서도 “산을 닮은 아이들” 앞에 조심스러워지는 마음도 있다. 정성을 담지 않은 말이 함부로 나가지는 않았는지, 가지는 데는 열심이어도 나누는 데는 인색한 삶이 들추어지지는 않았는지 괜히 뒤가 꿀리는 탓일 게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