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 박완호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 박완호
너의 부재를 긍정하는 일, 물 위를 나는 잠자리의 날갯짓에 얹힌 눈길에 잠깐 머뭇거리는 수면의 굴곡을 감지하는 일, 누구도 읽어내지 못한 너의 잠언을 해독하는 일, 네가 밟아온 발자국들을 남김없이 헤아리는 일, 찡그린 이마에 파묻힌 번민의 무게를 재는 일, 눈금을 읽던 저울까지를 버리는 일,
바짝 말라 있던 꼭지에 물기가 감돌게 하는, 숨어 있던 꽃봉오리를 허공으로 쑥쑥 밀어올리는, 창백하던 하늘을 한순간 홍조로 물들이는, 캄캄한 숲의 육체에 깃들어있던 새의 문장을 끄집어내는,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그런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너무 많은 당신』, 문학의전당, 2014.
* 인생의 긴 서사를 줄이면 사랑과 죽음이라고 흔히 말한다. 지금껏 무수한 사람들이 사랑과 죽음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여직도 사랑은, 죽음은 어떤 말과 글에도 포박되지 않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형상화하려는 모든 예술적 시도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를 사랑하는 일은 “너의 부재를 긍정하는 일”이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시작되는 사랑론은 개인의 의중이 깊게 반영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말처럼 “네가 밟아온 발자국들을 남김없이 헤아리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기울여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 과정에 함부로 남을 파악했다고 단정하는 일이야말로 사실은 사랑의 덫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서 사랑은 “눈금을 읽던 저울까지를 버리는 일”이어야 한다.
나도 같이 꿈꾼다. 누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상 자체가 사랑 속에 있기를. (이동훈)